“유럽 재정위기 등 국제 정세가 걱정이지만 일본 경제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사사키 미키오 미쓰비시상사 상담역(전 회장)은 지난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기자와 만나 올해 일본 경제를 전망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본인 특유의 조심스러운 화법이었지만 자신감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 중 “일본은 끝났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본은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일부의 시각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날 일본 내각부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4.1%(연율 기준)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3분기 연속 성장을 거듭했고, 전문가 예상치 3.3%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인은 “소니와 파나소닉이 일본의 전부가 아니다”고 말했다. 일부 전자기업의 부진을 일본 경제 전체의 몰락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을 지나치게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혼란과 대지진 등 외부요소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여전히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구조는 탄탄하다는 것이다.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은 “삼성의 성장세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탔기 때문이지 다른 기업이 넘볼 수 없는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또 “1946년부터 중소기업육성법을 만들어 ‘모노즈쿠리(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장인정신)’를 키워온 일본 기업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22일 일본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두 단계 낮추자 국내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수준이 같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국가채무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국채 대부분이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어 재정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또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을 따져봐도 아직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기는 멀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일본 기업인은 “일본은 소니가 무너져도 국가 경제를 이끌 산업이 있지만 한국은 삼성이 무너졌을 때 대안이 있느냐”고 했다. 지난 20여년간 세계 휴대폰 업계 부동의 1위였던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이 떠올랐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리가 일본과 동급”이라는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남윤선 오사카/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