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10% 넘게 급락했다. 연일 전해지는 유럽 재정위기 관련 소식들로 투자가들의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다.

20일 전문가들은 그리스 총선이 예정된 내달 17일까지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퇴출 우려로 마찰적 증시 조정 구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 증시는 공포를 상당 부분 반영한 만큼, 투매에 동참하기 보다 일단 관망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 거래일 기준 사흘만 빼놓고 연일 하락, 1900선과 1800선이 연이어 무너졌다. 이달 들어 10.83% 떨어졌고 특히 지난주 7.02% 폭락하면서 투자가들의 공포는 극대화됐다.

증권가에선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의 가격 매력이 높아진 만큼 추격 매도에 나설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우선 그리스 디폴트와 유로존 퇴출은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데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고 드라크마화로 회귀할 경우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전망이고, 방위비를 비롯한 재정지출 부담 확대와 금융시스템 마비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그리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 후 성장에 대한 지원을 얻어내는 전략적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최운선 LI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그리스 총선이 예정된 다음달 17일 이전에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형성되면서 코스피지수 1710~1750 구간이 지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오는 7월 1일 출범하는 유로안정화기구(ESM)에 대한 기대가 금융시장에 선반영될 전망이고, 긴축 일변도의 구조조정 정책이 성장에 대한 배려 확대로 전환하면서 관련 기대도 확산될 것이란 관측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역시 "그리스가 정치적 안정만 되찾는다면 유럽중앙은행(ECB)을 중심으로 유로존의 자금 지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이탈리아 총선 등의 사례를 보면 긴축을 반대하던 당이 집권에 성공한 다음엔 시장 친화적인 정책으로 전환됐는데 그리스 총선 역시 결과에 상관없이 누구든 집권만 한다면 상황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리스 퇴출을 감안하더라도 추가적인 금융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강 팀장은 "현재 국내 증시가 그리스 퇴출 가능성을 선반영하고 있는데, 그리스 퇴출을 가정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적용해도 추가 조정 가능폭은 5~7% 미만"이라며 "극단적인 가정하에 투자포지션을 변경하기보다는 일정부분 위험을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의미 있는 바닥이 형성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최근 증시 급락은 펀더멘털(내재가치) 훼손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하락치고는 지나치게 낙폭이 과도했다"며 "국내 증시의 가격 매력이 충분히 높아진 만큼 추격 매도에 나설 시기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 1800선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8.2배 수준으로 2005년 이후 코스피지수 평균치(10.1배)를 큰 폭으로 밑돌고 있다. PBR 역시 1.1배에 불과, 2005년 이후 평균치(1.4배)와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이달 들어 증시 하락을 주도한 유럽계 자금의 이탈을 기관들이 이끌지 않았다는 점은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시황팀장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리스크로 지난달 이후 신흥국 증시에서 52억달러가 순유출됐는데, 이는 2010년 이후 진행된 신흥국 증시의 자금 대량 유출 사태 총 6번 중 규모와 강도에 있어 네번째로 강한 것"이라면서도 "유럽계 투자자중 기관은 개인과 달리 한국 주식에 대한 자금 집행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순매도한 금액 중 절반 이상이 유럽계 자금이란 점에서 최근 유럽계 자금의 향배가 중요하다고 이 팀장은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유입되는 자금을 펀드 소재지 및 투자 주체별로 구분한 결과, 유럽계 펀드 자금 중 개인자금은 4월 이후 지속적으로 환매에 나서고 있지만 기관은 오히려 한국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현재 외국인 매도 주도 세력이 유럽계지만 개인 대비 월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계 기관이 환매에 동참하지 않고 있어 지난해와 같은 대량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가능성은 높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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