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한민국 고졸 인재 Job Concert ] (1) 대학원생 인턴 가르치는 고졸 행원…"스펙보다는 실무능력"
서울 신정여상 3학년 정선하 양과 세민정보고 3학년 이준혁 군은 요즘 1주일에 한 번 하교 후 기업은행 목동사거리지점으로 간다. 고교 졸업 전 기업은행에 조기 채용된 두 학생은 오는 12월 정식 근무를 앞두고 실무를 익히고 있다. 교육은 광주상고 출신인 박진수 목동사거리지점장과 신정여상을 졸업하고 지난 1월 입행한 문보경 계장이 맡는다. 박 지점장은 “15년 만에 다시 고졸 신입 행원들을 만나게 돼 반갑다”며 “대졸 못지않은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군은 “고졸이라고 무시받지 않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며 “최종 목표는 행장”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1990년대 4년제 대학이 급격하게 늘면서 사라진 ‘고졸 인재’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업들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들을 앞다퉈 데려가고 있다. 외형적인 스펙보다는 실무 능력을 중시해서다.

◆‘고졸 인재’ 수요 급증

국민은행 광화문지점에 근무하는 김예원 주임은 올 2월 대전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원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 주임은 최근 이 지점에 인턴 행원으로 왔던 서울의 한 명문대 대학원생 앞에서도 당당한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늘 금전이 오가는 은행은 학력보다 고객의 신뢰가 더 중요하다”며 “고객들이 나를 보고 은행을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전국 마이스터고 21개교는 3월 현재 전체 3학년 학생 3600명의 84.8%인 3056명에 대한 채용 약정을 기업과 체결했다. 금융권의 채용 규모도 대폭 늘었다. 지난해 85명의 고졸 행원을 뽑았던 우리은행은 올해 200명을 채용했다. 기업은행은 고3 학생 110명을 내년도 예비 행원으로 이미 선발했다. 한화그룹이 고졸과 전문대졸 신입사원을 지난해 2800명에서 올해 3700명까지 늘리기로 하는 등 기업들도 고졸자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공공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 16개 시·도는 올해 고졸 공무원 206명을 임용시험을 통해 선발할 계획이다. 서울 등 7개 교육청은 모두 31명을 뽑는다.

[2012 대한민국 고졸 인재 Job Concert ] (1) 대학원생 인턴 가르치는 고졸 행원…"스펙보다는 실무능력"

◆‘고졸 신화’ 재현 기대

고졸 샐러리맨들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일하는 도전정신은 금융회사와 기업 등에서 전문성과 성실함으로 ‘별(임원)’을 단 선배들의 성공 사례를 본인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시중은행은 보통 10명 안팎의 부행장 중 2~3명가량이 고졸 출신이다. 김재곤 국민은행 경영지원그룹 부행장(광주상고), 주인종 신한은행 여신심사그룹장(덕수상고), 유중근 우리은행 기관고객본부장(동지상고), 박재호 하나은행 영남사업본부장(대구상고), 안홍열 기업은행 신탁연금본부장(광주상고) 등이 대표적이다.

드럼세탁기를 국내 기술로 개발한 조성진 LG 부사장, 한국BMW를 맡아 전 세계 지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시킨 김효준 대표도 대표적인 ‘고졸 신화’로 꼽힌다.

◆고비용 ‘학력 인플레이션’ 깨야

정부와 기업이 고졸 채용을 대폭 늘린 것은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사회적 고비용 구조와 인력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청년실업난을 해결하려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고졸 인재들의 수준 높은 실력도 뒷받침됐다.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고졸 공채를 진행한 삼성전자의 원기찬 인사팀장(부사장)은 “대졸자보다 훨씬 뛰어나고 당장 실무에 투입해도 될 만한 인재가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기업과 금융회사 등에서 고졸에 대한 차별도 없어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창구 직원 중 고졸과 대졸의 처우를 동일하게 하고 있다. 고졸 창구 직원으로 4년 근무하면 정규직 대졸 여자 행원의 초임 연봉 수준에 이른다. 복리후생은 대졸자와 동일하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마이스터고 정책 등에 따라 고교 졸업 후 산업현장에 뛰어드는 인재가 늘어나고 있다”며 “적성에 안 맞는 대학에 억지로 가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찾고 계발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