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위한 정당’을 자처하는 통합진보당이 정작 노동세력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비례대표 부정 선거 파문으로 진보당이 표류하는 가운데 최대 지지 기반인 민주노총이 ‘지지 철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진보당은 울산 창원 등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진보당이 17·18대 국회에서 노동분야 입법과 관련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점도 노동세력의 이탈을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사진)은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이라며 “그런데 진보당은 통합 과정에서 대단히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승리해서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지만 정작 눈물을 흘리고 있는 노동자들은 (통합에) 반대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2000년 옛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점차 진보당을 지지하는 단순 유권자 집단으로 후퇴해 갔다. 현재 진보당 당원 13만명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은 4만5000명(34.6%)이다. 투표권이 있는 진성당원 7만5000명 중에선 3만5000명(46.7%)을 차지한다. 민주노총의 집단 이탈 시 진보당의 존립 자체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진보당 당권파가 민주노총이 부정 선거 사태 수습책으로 내놓은 쇄신안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민중민주(PD) 인사 및 진보신당과 함께 다른 당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민족해방(NL) 계열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 당이 망가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당이 노동 관련 입법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은 18대 국회에서 단 한 건의 노동 관련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도 단병호 전 의원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을 가결시킨 게 전부다.

진보당이 당내 계파·이념 갈등 때문에 노동 정책을 주도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당내 NL계열은 통일·반미 등 민족적 문제에 주력한 반면 PD계열은 노동과 계급문제에 중점을 뒀다. NL계열이 당내 주도권을 잡으면서 노동 문제가 중심에서 밀렸다는 분석이다.

한 노동분야 전문가는 이날 기자와 만나 “민노당의 입법 내용을 보면 노동은 뒷전”이라며 “노동자를 위한 껍데기당”이라고 비판했다.

허란/양병훈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