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의료기기단지. 문막IC 부근에 있는 이 단지에 들어서면 의료기기업체 수십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중 언덕 위에 호텔처럼 근사한 사옥이 보인다. 이 회사가 ‘심장충격기(AED·심장제세동기)’를 만드는 씨유메디칼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창업 10년 만에 70여개국에 1000만달러어치 이상의 심장충격기를 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의료기기는 개발하기도 힘들지만 각종 인증을 받고 수출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어떻게 이 회사는 이 분야에서 성장한 것일까.


강원도 원주의 한 작은 공장. 이곳에서 먹고자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공장 안에는 야전침대와 슬리핑 백이 놓여있고 먹다 남은 컵라면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공장과 사무실을 합쳐 월세 10만원짜리 비좁은 공간. 고시원이나 원룸보다 저렴한 이곳에서 의료기기를 개발해 세계 시장을 제패하자는 꿈을 지닌 젊은이들이다.

그로 부터 10년. 그들이 마침내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주역은 씨유메디칼시스템의 나학록 사장(49)이다. 이 회사의 연간 수출액은 1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싼 공장을 찾아 내려온 나 사장을 비롯한 창업멤버들은 창업 후 몇 달 동안 기숙사도 없이 사무실 내 야전침대와 소파에서 자며 제품 개발을 해 이런 성과를 일궈냈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심장충격기’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발된 것이다. 의료기기 선진국인 일본보다 7년이나 앞선 것이다.

지금은 호텔급 공장으로 이전한 씨유메디칼시스템에 들어서면 심장충격기를 제조하는 라인이 보인다. 인쇄회로기판에 자동기계를 통해 부품을 얹고 조립한 뒤 테스트한다. 일부 라인은 청정공간으로 돼 있다. 최종 테스트 라인에 들어서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각종 언어로 심장충격기 사용방법을 안내하는 소리가 퍼져나온다. 여러나라에 수출하다보니 사용방법을 알려주는 언어도 20여가지에 이른다.

월세 10만원짜리 공장서 창업…10년 만에 1000만弗 수출
나 사장이 창업한 것은 2001년 말.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LG그룹을 거쳐 의료기기업체 메디슨의 자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앞으로 심장충격기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창업했다. 이때가 38세. 기술과 의지, 젊음이 자산이었다. 가장 저렴한 창업공간을 찾던 중 마침 강원도 원주가 지자체 차원에서 의료기기산업 육성을 내걸며 파격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이곳을 택한 것이다.

그는 주저없이 짐을 싸들고 내려갔다. 작은 공장을 계약하고 5명으로 시작했다. 이 중 1명을 빼면 모두 서울 등 수도권에 집을 두고 있었다. 잠잘 곳이 문제였다. 퇴직금 등을 털어 모은 자금으로 장비 구입, 기술 개발에 쓰자 10여평짜리 아파트 한채를 월세로 얻을 돈도 부족했다. 일단 세를 얻었다가 자금이 모자라자 아예 공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몇 달 동안 공장 안에서 4명이 먹고 자며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나 사장은 “그때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창업한 2001년은 벤처거품이 꺼지던 때여서 엔젤이나 벤처캐피털 누구도 창업기업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이들 모두 손실 만회에 정신이 없었고 일부 벤처캐피털은 거액의 손실을 보며 가슴앓이를 하던 때였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생활하던 동료들이 창업기업에 합류한 뒤 한숨을 쉬는 것을 볼 때마다 나 사장의 가슴이 미어졌다. 다행히 국책연구과제를 몇 건 수주해 자금을 조달해 나갔다.

창업 이듬해인 2002년 심장충격기를 개발했고, 독일 뒤셀도르프 국제의료기기전시회(MEDICA)에 출품하면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전시회는 수십만명의 바이어들이 찾는 세계적인 전시회다. 이곳을 찾은 이탈리아 바이어가 괜찮은 제품이라며 몇 대를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사장은 “심장충격기 원천기술은 일본조차 2009년에야 개발했을 정도로 우리 기술이 앞섰다”고 설명했다. 이후 3년여 동안 5억원 이상을 투입하며 각종 임상을 거친 끝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수출에 날개를 달기 시작해 지금은 아시아 유럽 북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에 내보내고 있다. 작년 매출은 230억원에 달했고 이 중 60%가량을 수출에서 일궈냈다.

월세 10만원짜리 공장서 창업…10년 만에 1000만弗 수출
수출 물량의 절반 이상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선진시장으로 선적하고 있다. 심장충격기는 심장마비 발생시 전기 충격을 통해 정상 심전도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장비다. 정식명칭은 심장마비 시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지 않고 파르르 떨리는 ‘세동(細動)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제거한다고 해서 ‘심장 제세동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용어가 너무 어렵다보니 심장충격기라고 부른다.

이 회사는 최근 옷과 휴대폰을 이용해 잠을 자거나 운동을 하다가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길 경우 자동으로 사이렌을 울리고 응급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의복형 생명위기 대응시스템’을 개발했다. 옷에 달린 센서가 심장박동의 이상을 감지해 자동으로 비상벨을 울리고 119 등 전화기에 입력된 곳에 자동으로 구조요청할 수 있는 장치다.

나 사장은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심장마비로 입원한 환자가 2만5000여명에 이르고 이 중 쇼크는 70%가 가정에서 발생했다”며 “이들의 소생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에서도 가정용 심장충격기를 보급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효과가 적었던 것은 심장에 이상이 생겨도 주위 사람들이 짧은 시간 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잠자다가 심장마비가 생기면 옆에 자던 사람이 잠에서 깨어날 틈도 없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는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과 심장충격기가 함께 쓰인다면 소생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의료기기에 정보기술과 전자기술을 접목시킨 제품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자체 연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서울대 생체공학연구소, 분당서울대병원, 연세대 의대응급센터, 강원대 의용공학과 등과 공동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