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루쉰(魯迅)이 쓴 소설 아큐정전 (阿Q正傳)의 주인공 아큐(阿Q)는 패배를 모른다.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애들한테 맞아준 거야”라며 의기양양하게 코피를 닦는 그다. “넌 사람이 아닌 짐승이야”라며 괴롭히는 사람에게 “나는 벌레예요”라고 답한 후 마음 속으로는 ‘짐승보다 더 천한 것을 내가 찾아냈다’고 흡족해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완벽한 승리자로 합리화하고 우쭐거리는 게 아큐다.

92년 전 중국에 나타났던 아큐의 망령이 오늘날 서울을 어슬렁거린다. ‘반(反)지성·비(非)상식의 승리법’을 숙달한 왜곡된 영웅심리의 소유자들이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조악하기 이를데 없는 부정투표를 자행, 한국 선거의 역사를 자유당시절로 후퇴시킨 게 명백한데도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라고 우긴다. “사욕이 들어갔다” “근대화도 안된 집단이다” “소름이 끼친다” 등 극단적 비판과 모욕도 소용이 없다.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킨 조사행위가 잘못됐다”며 자신의 행위를 보호한다. 규범을 무시하고 상식을 농단하는 것에서 아큐의 냄새가 짙게 난다.

소영웅 주의자들의 난동

아큐식 승리법의 추종자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공직자 선거법의 후보 매수죄로 징역 1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돈을 준 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당선 당시 부정한 합의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진실이 이겼다”는 궤변과 함께 매일 출퇴근하는 곽 교육감은 자신 스스로를 “법치주의의 전사(戰士)”라고 평가한다. 야당이 참패한 4·11총선을 “탄핵정국 이후 최대의 성과를 올린 선거”라고 규정한 문성근 전 민주통합당 대표대행 역시 같은 부류에 넣을 수 있다.

소위 아큐식 ‘정신적 승리법’은 왜곡된 영웅심리가 모험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정치와 결부되면 대단히 위험해진다. 막스 베버는 “정치란 악마적 힘과의 결탁”이라고 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끌고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나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막말파문의 주인공인 김용민 씨가 4·11총선에 출마했던 것이 난센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꼼수는 그 실패의 원인을 아큐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꼼수의 핵심 멤버인 김어준 씨는 최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야권패배의 책임을 보수와 진보가 합작해 나꼼수에 덧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 발 더나아가 “연말 대선에서 이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곡된 현실인식과 소영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주변의 부추김에 흥이 나서 비구니를 희롱하고, 과부에게 동침을 요구하는 등 ‘어설픈 용맹심’ 을 보인 아큐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법과 상식에 기초한 소통 절실

아큐가 활보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법이든 상식이든 인식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규범이 제 역할을 못한다. 그러니 과학적 무지는 돌아볼 생각 없이 광우병이란 말만 들리면 촛불부터 찾는다. 나꼼수의 방송 재개를 알리는 행사에 참석해 “나꼼수와 함께 대선에서 이기겠다”고 말한 정동영 의원이나, 나꼼수를 위로하며 가슴아프게라는 노래를 부른 천정배 의원처럼 퇴행적 아집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이 아니다. 상식에 기초한 사회적 소통,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가치정립이 절실하다.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는 아큐는 사라져야 한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