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2잔 마실거 1잔으로 줄이고 대신에 차를 마셔보세요. 차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 몸에 좋은 요소가 많이 들어있고 치매 예방과 전자파 차단에도 좋습니다."

8일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 안채 명원다헌(茗園茶軒).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 할머니가 우리 몸에 좋은 차의 쓰임새를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주인공은 민속관의 춘계문화특강 연사로 나선 김의정 인간문화재(72). 이날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가량 진행된 특강에서 그는 '명원선생과 한국차의 정신'을 주제로 학생들과 차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머리가 하얗게 서린 백발의 그는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듯 강연을 이어나갔다. 우리 차의 기구한 역사에 대해 말할 땐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눈빛은 살아있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가야시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신라를 거쳐 고려 때 '황금기'를 맞이한다. 당시 국교였던 불교의 스님들은 차를 즐겨 마셨고 연중 행사땐 임금과 국민들이 다함께 차를 마시며 다도문화를 즐겼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1592년)으로 우리나라의 고유한 차 문화는 사라졌다.

그는 "한반도에 쳐들어온 일본인들이 고쇼마루라는 배를 이용해 차 도구를 모두 약탈해갔다"며 분개했다. 일본 교토의 한 사찰에 보관중인 '기자에몬 이도다완'이란 다기(茶器)가 대표적인 약탈품이다. 이는 현재 일본 국보 제26호로 지정돼있다.

일본에 의해 사라진 한국의 차 문화는 다시 일본에 의해 한국에 들어온다.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나라 여학생들에게 다도(茶道)를 가르친 것. 평소 차에 관심을 갖고 있던 명원 김미희 선생은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의 응원을 위해 유럽을 방문했다 파티 문화를 체험하며 차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그는 "명원 선생이 유럽 방문을 통해 '식음(食飮)이 발달한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란 것을 깨달으셨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우리의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 일본인이 명원 선생에게 "당신네 나라에는 차 역사가 있나" 라는 물음에 "우리는 우리식대로 마신다"고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선생이 다도 연구에 더욱 확고한 의지를 갖게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강연 말미에 그는 "지금은 정신 안차리면 우리 것을 쉽게 뺏기는 시대" 라며 "너무 외국것만 찾지 말고 우리문화를 사랑하고 우리 차를 사랑하자. 그것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이날 특강을 들은 이원주 시각디자인과 학생(25)은 "결코 한국의 차 문화가 쉽게 정립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 "앞으로 (우리 차문화가)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말했다.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인 그는 한국 다도의 선구자인 명원 김미희 선생의 둘째 딸이다. 그는 차 문화 외에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공동 대표로 활동하는 등 우리나라의 문화재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다.

명원 선생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잊혀져온 한국의 전통차와 다례, 차 산업 등을 부흥시킨 인물이다. 한국 전통 다도의 복원과 생활 다례 보급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5월 25일 '차의 날' 기념식에서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아호인 명원(茗園)은 ‘차의 뜰’이란 뜻이다.

국민대학교는 1981년 명원민속관을 건립하고 국내 4년제 대학에선 처음으로 다도강좌를 개설, 대학의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한경닷컴 김소정 기자 sojung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