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도덕성은 과연 몇 점인가. 진보당의 경선 부정실태를 보면서 드는 느낌은 이런 당이 어떻게 ‘진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하는 당혹스러움이다. 그동안 입만 열면 자신만은 독야청청하다고 주장해왔던 좌파이념정당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과연 민주사회에서 투표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성인남녀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어 인플레 현상까지 유발하는 상황에서 투표권 행사가 무슨 큰 의미를 갖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투표행위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작동유무를 가늠할 만큼 핵심적인 잣대다. 시민들의 뜻이 드러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보다 더한 것이 없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독특한 선거제도가 있었다. 독재를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골라 10년간 추방하는 도편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인기가 있는 정치인들이 그 대상이 되었는데,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무찌른 테미스토클레스도 이 가혹한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테네에서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여신상을 조각한 유명한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이야기다. 그도 인기가 있었기에 위험인물로 치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투표하는 날 그는 사람들 주변을 거닐다가 한 사람이 도자기 파편을 들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페이디아스는 그 이유를 물었다. 사연인즉 글을 몰라 추방할 인물의 이름을 적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페이디아스가 대신 이름을 적어주겠다며 도움을 자청했다. 뜻밖에도 페이디아스라는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놀란 페이디아스는 영문을 물었다. 그러자 페이디아스가 유명인사이기 때문에 보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페이디아스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주었다. 이토록 페이디아스는 정직했던 것이다.

우리는 진보당이 페이디아스처럼 정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존재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이니 어찌 그를 본받으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도덕불감증이라고 할 정도로 진보당의 도덕성이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험 중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는 못할망정 그 부정행위를 적발한 감독관에 대해 왜 적발했느냐며 따지고 비판한다면, 도둑이 매를 드는, 이른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지금 경선 부정행위를 적발해 발표한 인사를 두고 진보당 내에서 격렬하게 공격하는 행위가 이와 무엇이 다른가.

선거를 두고 흔히 ‘경쟁’이라고 하는데, 경쟁을 뜻하는 영어 ‘competition’은 더불어 유권자에게 표를 구한다는 라틴어 ‘com+petitio’에서 비롯됐다. 로마인들은 공직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정치인들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경선부정을 저지른 진보당의 행태를 보면 경쟁자들끼리 선의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하는 당당한 행위가 아니라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유권자들의 표를 조작하는 속임수 행위였다.

진보당의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시치미를 떼려는 데 있다. 민주사회에서 선거부정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는가. 저질러서는 결코 안되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모습을 보여도 부족한데 오히려 “뭐가 잘못되었나” 하는 식으로 항변하고 있으니, “무지는 죄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다른 정당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그토록 날선 비판을 하다가 막상 자신이 저지르면 일단 덮고 보자는 행태야말로 남의 얼굴에 묻은 검댕은 더럽다고 하고 자신의 얼굴에 묻은 검댕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 비열함의 극치다.

통합진보당이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부정을 저질러놓고 정당 내부문제라고 호도하거나 정화능력이 있으니 자신들에게 맡겨달라고 하지 말라. 그것은 이번 총선에서 괄목할 만한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정당으로서는 너무나 염치없는 짓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응당 그에 대한 책임과 몫을 다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존경심 없이 제도만 이용하면서 정치적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것은 꼼수의 태도다. ‘나꼼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부정을 저지르고도 궤변을 통해 빠져나가려 한다면, ‘진보’의 정당이 아니라 ‘나꼼수’의 정당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