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연기에서 새벽밥을 먹고 올라왔습니다. 석 달짜리 정기예금으로 4500만원을 넣었는데 만기가 7월입니다. 이 돈으로 아파트 잔금을 내야 하는데 오늘 못 찾으면 몇 개월간 돈이 묶인다고 해서 서둘러 왔습니다.”

4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있는 솔로몬저축은행은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문을 열기 1시간 전부터 100여명의 예금자들이 줄을 섰고 낮 1시쯤에는 접수대기표 번호가 1100번까지 찍히면서 결국 발급이 중단됐다. 대기번호가 600번대인 한 예금자는 “이곳에서 하루에 맡을 수 있는 고객이 400명도 안된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예금액이 5000만원을 넘어 잘못하면 낭패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뱅크런’ 현상은 서울 솔로몬저축은행의 압구정점에서도 똑같이 빚어졌다. 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에 이미 번호표가 900장 이상 빠져나갔다.

한국저축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은 번호표 발급기가 500장을 발급하다가 갑작스레 고장나기도 했다. 대기 고객이 이미 500명을 넘어선 상태였지만 직원들은 하는 수 없이 손으로 번호를 매겨 대기표를 나눠줬다. 한국저축은행은 이날 처리할 수 있는 고객업무가 넘어섰다고 보고 7일에 쓸 수 있는 대기표를 내줬는데 항의가 빗발쳤다. 일요일에 영업정지를 당하면 월요일 대기표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항의였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이통천 한국저축은행 대표는 직접 고객설득에 나섰다. 이 대표는 본점 창구에 나와 “한국저축은행은 자구노력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고객들은 시큰둥하게 반응하면서 예금을 찾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한국저축은행 계열사인 진흥저축은행에도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오전 10시쯤 100명에 가까운 대기자가 돈을 찾기 위해 지점에 몰려왔다. 이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하 1층 강당으로 30명의 고객을 데려간 뒤 “진흥저축은행은 영업정지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진흥저축은행은 곳곳에 ‘예금자 여러분, 진흥저축은행은 금번 조치대상 은행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이번 사태는 퇴출 대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진 현대스위스저축은행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 관계자는 “평소에는 많아야 70억~80억원이 빠졌지만 오늘은 200억원 이상이 인출됐다”며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이 아니라고 지점마다 써붙여 놓기도 했지만 고객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기시간이 늘어나면서 고객들은 여기저기서 저축은행업계와 금융감독당국을 싸잡아 비난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솔로몬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다는 박인자 씨는 “지난해 퇴출시킬 때 한꺼번에 하지 이렇게 시시때때로 불편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며 “지난해 토마토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수개월 만에 되돌려 받았는데 이번에 다시 고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돈을 찾으려는 예금자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서울 대치동에서 왔다는 박모씨는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뺀다고 하는데 우리는 직접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날도 더운데 기다렸다가 돈을 찾아가려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종서/임도원/김일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