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드디어 가능해졌다. 보건복지부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네 가지 종류의 안전상비의약품 중 20개를 정해 11월부터 24시간편의점 등에서 판매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구체적인 품목이 정해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대상 의약품 24개를 우선 선정해 놓았는데 가급적 이 중에서 20개를 추려낼 계획이라고 한다. 복지부 장관이 의·약계와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한 품목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여기서 최종 품목을 확정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복지부가 선정해 놓은 24개 품목 중에는 훼스탈 판피린정 등 현재 생산되지 않는 약품이 거의 절반인 11개나 된다는 점이다. 이들 11개 품목은 설사 약국 외 판매대상 약품으로 분류되더라도 소비자들은 편의점 등에서 살 수 없다. 극단적인 경우엔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되는 20개 품목 중 실제 소비자들이 구입 가능한 약은 9개에 그칠 수도 있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현재 생산 여부보다는 안전성 위주로 약리적인 성분을 우선 검토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최종 품목에는 24개 이외에 다른 약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의약품에선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약을 11개나 후보로 포함시켰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24개 이외 다른 약이 추가될 수 있다지만 법정기구도 아닌 품목선정위원회가 복지부가 선정한 리스트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약품을 추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자칫 소리만 요란하고 실효성은 거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박카스 등 의약외품의 슈퍼 판매 때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정부는 48개 약품이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슈퍼 등에서 판매가 된다고 했지만 이 중 실제 제약회사가 생산 중인 것은 전체의 절반도 안되는 18개에 불과하다. 이번 역시 정부가 약사들 눈치를 본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상비약 약국 외 판매는 80% 넘는 국민이 원하는 바다. 정부는 꼼수 부리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