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왕 루이14세가 베르사유 정원을 산책할 때마다 분수관리인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질적인 물 부족 때문이었다. 사방의 호수에서 물을 끌어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결국 관리자들은 평소에는 가동을 중지하고 왕이 납실 때만 분수를 가동했다. 분수마다 관리자를 배치, 수신호로 왕의 행차를 알리면 해당 분수가 물을 뿜게 하는 것이었다. 그곳은 태양왕이 정치적 쇼를 펼치는 화려한 무대였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가 페테르호프 궁전의 정원을 산책할 때 그곳의 분수관리인들은 물 걱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 이 치밀한 제왕은 궁전의 입지를 바닷가에 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궁전은 물론 정원의 디자인까지 꼼꼼히 챙겼다. 말하자면 그곳은 그가 살 집이었다. 베르사유가 군림하는 장소였던 데 비해 페테르호프는 휴식처였다. 그래서일까. 분수가 뿜어내는 물결이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