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를 보는 재미는 누가 뭐라 해도 화끈한 공격력이다. 작년 프로축구에서 최강희 감독은 ‘닥치고 공격’으로 전북 현대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최 감독의 ‘닥공’ 전략이 축구대표팀에 접목돼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에서도 쾌거를 이뤘다. 그래서인지 ‘닥치고 취업’에서 ‘닥치고 정치’에 이르기까지 ‘닥치고’ 시리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닥치고’가 뜬금없이 여러 방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유의 문화에 기인한다. 바로 압축성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 압축적으로 변모를 거듭해왔다.

압축성의 상징으로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문제가 저출산·고령화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걱정되는 것은 급격한 인구이동이다. 물론 국제적 인구이동은 글로벌화와 더불어 초국가주의 현상으로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에 해당하는 1억9200만여명이 자신이 출생한 모국이 아닌 곳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 수가 1990년에 5만여명에 불과했지만 2010년 말에는 12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6%나 된다. 금년 2월 말 기준으로 세분화해 보면 58만8000명의 이주노동자, 21만1000명의 결혼이민자, 2만3000여명에 달하는 북한이탈주민들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외국인은 2020년에 전체 인구의 5%, 2050년에는 9.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불과 수십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압축적 인구이동은 이미 비슷한 인구유입을 경험한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사례와는 달리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인구 증가로 내수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도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초만 해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적극적인 노동력 수출국가였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아시아노동자들이 선망하는 코리안 드림의 목적지로 변모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내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중소기업이나 3D업종의 인력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남녀성비가 깨지면서 결혼 적령기를 지난 농어촌의 남성들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여성들과 결혼을 통해 농촌인구를 형성하기도 했다. 또한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도 통일을 바라본다면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다.

하지만 양질의 이주민 유입으로 사회의 다양성 개방성 창의성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비숙련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신빈곤층을 형성하고 기존 저소득층 노동자의 임금을 감소시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결혼 이주여성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쏟아진 도를 넘는 무차별적인 폭언들이나 중국동포의 살인범죄 사건 이후 외국인에 대한 불필요한 혐오나 배척 현상이 그 예다.

정부는 다문화가 세계화시대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다각도로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주로 행정지원에 쏠려있다 보니 정작 필요한 국민의식 개선에는 효과가 미미하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면서도 차이를 인정하는 다문화주의가 전제돼야 하는데도 혈통 위주의 지원정책이 많고 이민자를 주류사회에 일방적으로 적응시키는 동화주의인 것이다. 마침 지난 4월29일은 단일민족의 허구성에서 깨어나 다인종 다민족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것을 깨닫게 한 LA 폭동이 발생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금처럼 국내 이주민에 대한 ‘닥치고 살아’ 방식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압축성이 역동성이 아니라 비극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미 우리 민족은 726만명이 넘는 재외동포가 있어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동포)라고 할 정도다. 수비수 출신인데도 공격 전략을 추구한 최 감독의 ‘닥공’ 축구가 화끈하고 재미있는 축구라는 새로운 장을 연 성공비결은 선제적 전략이다. 외국인의 유입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는 한번 흘러가면 되돌리기 어렵다.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아닌 다문화를 껴안는 포용적 사회로 가기 위한 선제적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