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허술한 본인확인' 노린 보험사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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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건보증 빌려 암진단 받고 동생이 보험 수십억 가입
보험금 누수 연 3조4000억…지급액의 12% '사기' 추정
뒷짐 진 복지부 "병·의원 확인의무 없다"
보험금 누수 연 3조4000억…지급액의 12% '사기' 추정
뒷짐 진 복지부 "병·의원 확인의무 없다"
인천에 거주하는 김모씨(54·여)는 작년 말 오른쪽 가슴에서 종전에 없던 멍울을 발견했다. 김씨는 유방암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친언니의 건강보험증을 빌려 시내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초기 유방암이었다.
김씨는 한 달간 생명보험회사 9곳에서 총 17억원의 암 진단금을 탈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다. 책임개시일 면책기간인 90일이 지나자마자 다른 병원에 들러 진단서를 끊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암보험에 집중 가입한 점을 이상하게 여긴 보험사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도용해 검진을 받은 뒤 진단이 확정되면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는 사기가 늘고 있다. 전과가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데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보험계약을 맺지 않으면 적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보험사들의 설명이다.
○병원장·브로커 공모 사기도
병·의원의 허술한 본인확인 절차를 이용한 보험사기가 암이나 뇌출혈 등 중대 질병뿐만 아니라 비교적 작은 수술을 받을 때도 악용되고 있다.
요실금 보험에 가입해 놓은 이모씨(47·여)는 경남 창원의 산부인과에서 친구를 시켜 요실금 수술을 받도록 했다. 수술 전 인적사항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를 통해 이씨는 수백만원의 수술비를, 친구는 공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보험사기에 쉽게 성공한 이씨는 또 다른 친구를 밀양의 비뇨기과에 데려가 대리 수술을 받도록 했다. 보험사는 이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보험사기를 확인했다. 현재 소송을 통해 보험금 환수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엔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병·의원과 브로커가 공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찰은 뇌출혈 증상이 있는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보험사로부터 수십억원을 뜯어낸 신종 보험사기단을 최근 적발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현행 건강보험법상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본인확인을 할 의무가 없다”며 “초기 단계의 적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민영보험 부문의 보험사기 누수액이 2010회계연도에만 3조410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해 지급한 보험금 총액(27조4156억원)의 12.4%에 달하는 수치다.
○“확인 허술” vs “사생활 보호”
보험사들은 병·의원이 환자에 대한 본인확인을 철저하게 하지 않는 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법원이 명백하게 보험사기 판결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도 복지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보험사들이 사기에 연루된 병·의원에 대한 판결문을 지역 보건소에 보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일 정도”라고 말했다.
때문에 병·의원에서 환자에 대한 본인확인 절차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낮다. 의료계의 반대가 주된 이유다.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가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본인이라고 우기면 현실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본인확인을 의무화할 경우 병원이 자칫 법적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부 측은 “외국에서도 사생활 침해문제 때문에 대부분 환자의 보험가입 여부만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재길/주용석 기자 road@hankyung.com
김씨는 한 달간 생명보험회사 9곳에서 총 17억원의 암 진단금을 탈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다. 책임개시일 면책기간인 90일이 지나자마자 다른 병원에 들러 진단서를 끊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암보험에 집중 가입한 점을 이상하게 여긴 보험사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도용해 검진을 받은 뒤 진단이 확정되면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는 사기가 늘고 있다. 전과가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데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보험계약을 맺지 않으면 적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보험사들의 설명이다.
○병원장·브로커 공모 사기도
병·의원의 허술한 본인확인 절차를 이용한 보험사기가 암이나 뇌출혈 등 중대 질병뿐만 아니라 비교적 작은 수술을 받을 때도 악용되고 있다.
요실금 보험에 가입해 놓은 이모씨(47·여)는 경남 창원의 산부인과에서 친구를 시켜 요실금 수술을 받도록 했다. 수술 전 인적사항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를 통해 이씨는 수백만원의 수술비를, 친구는 공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보험사기에 쉽게 성공한 이씨는 또 다른 친구를 밀양의 비뇨기과에 데려가 대리 수술을 받도록 했다. 보험사는 이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보험사기를 확인했다. 현재 소송을 통해 보험금 환수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엔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병·의원과 브로커가 공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찰은 뇌출혈 증상이 있는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보험사로부터 수십억원을 뜯어낸 신종 보험사기단을 최근 적발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현행 건강보험법상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본인확인을 할 의무가 없다”며 “초기 단계의 적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민영보험 부문의 보험사기 누수액이 2010회계연도에만 3조410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해 지급한 보험금 총액(27조4156억원)의 12.4%에 달하는 수치다.
○“확인 허술” vs “사생활 보호”
보험사들은 병·의원이 환자에 대한 본인확인을 철저하게 하지 않는 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법원이 명백하게 보험사기 판결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도 복지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보험사들이 사기에 연루된 병·의원에 대한 판결문을 지역 보건소에 보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일 정도”라고 말했다.
때문에 병·의원에서 환자에 대한 본인확인 절차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낮다. 의료계의 반대가 주된 이유다.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가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본인이라고 우기면 현실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본인확인을 의무화할 경우 병원이 자칫 법적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부 측은 “외국에서도 사생활 침해문제 때문에 대부분 환자의 보험가입 여부만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재길/주용석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