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경북 칠곡군에 있는 ‘더 블루 닷 파크’. LG전자 동반성장 담당 임직원과 1, 2차 협력사 대표 등이 총출동했다. 이 자리는 LG전자가 만든 게 아니라 협력사 대표들이 직접 건의해 마련됐다.

이날 1차 협력사 100곳과 2차 협력사 100곳은 LG전자와 동반성장 협약을 맺었다. 1차 협력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2차 협력사까지로 동반성장 기운을 확대시키자는 취지였다.

○LG전자, 장기 어음 퇴출

LG전자는 올초 1차 협력사 500개 업체와 ‘하도급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달 2차 협력사로까지 협약 범위를 넓혔다. 만기가 60일 이상인 어음 지급을 하지 않고 현금 결제를 확대한 게 골자다. 대금지급 기일도 단축하고 경영컨설팅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도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윤리규범 실천 등을 약속했다.

지난달부터 수출입은행과 상생협약을 맺고 금리우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와 해외에 동반 진출하는 협력회사는 신용등급에 따라 최대 0.5%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적용받아 대출받는다.

TV와 PC사업을 하고 있는 HE사업본부의 협력회장인 박용해 동양산업 대표는 “협력사 간 협약을 토대로 LG전자에 최고 제품을 공급해 1등기업으로 성장하자”고 협력업체들을 독려했다.

LG전자 협력사 모임인 ‘LG전자 협력회’는 1987년 발족돼 공동 기술개발, 생산성 혁신, 우수업체 사례 배우기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LG전자는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협력사들을 위해 연구·개발(R&D) 활동을 돕고 있다. 지난해부터 2015년까지 연간 80억원을 투자해 협력사의 LED(발광다이오드), 태양광 등의 R&D를 지원한다. 혁신 활동을 위해 마련한 ‘오픈 이노베이션’ 사이트(www.collaborateandinnovate.com)를 통해 협력회사가 신기술 개발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협력사 전용 포털 사이트(www.lgesuppliers.com)에 ‘협력회사 상생고’ 코너를 만들어 협력사 임직원들의 목소리가 LG전자 경영진에 바로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동반성장 분위기를 확대하는 중심에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서 있다. 구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협력회사는 함께 1등을 하기 위한 공동운명체”라며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임원들이 동반성장 직접 챙겨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구 회장은 작년 10월 그룹 임원세미나에서 “동반성장으로 실질적인 변화와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임원들이 현장 곳곳을 다녀야 한다”며 “임원들이 직접 나서서 동반성장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동반성장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베풀었느냐가 아니라 협력회사가 실제로 경쟁력을 키워 기업 생태계가 얼마나 튼튼해졌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의 동반성장 중시 철학은 말로 그치지 않는다. 구 회장은 작년부터 직접 현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작년 4월 경남 김해 LG전자 협력사 이코리아산업을 들른 데 이어 6개월 뒤 경기 화성에 있는 LG화학 협력업체 디에이테크놀로지를 방문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1997년 설립된 2차전지 설비 생산회사로 LG화학과 함께 전기자동차 배터리에서 전극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노칭 설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현재 소형 배터리용 노칭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이 회사의 매출은 크게 늘어났고 LG화학 역시 설비 국산화로 구매비용을 20~50% 절감하고 있다.

구 회장은 디에이테크놀로지 임직원들을 만나 이 같은 협력 성과를 듣고 향후 양사의 협력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전기차용 배터리 같은 2차전지 분야는 대표적인 미래 성장산업으로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 대ㆍ중소기업의 탄탄한 협력관계가 더욱 필수적”이라며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구 회장이 그룹 내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처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 1월 신임 임원과의 대화에서는 “이제부터 협력사와 갑을관계는 없다”며 “협력사에 단순히 도움을 주겠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협력사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임을 인식하고 실행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4월에는 “LG전자가 뛰어난 완성품을 글로벌시장에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협력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협력사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