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예술가 한 명이 50만명 먹여 살려…K팝 지원 늘려야"
“한 명의 뛰어난 축구 선수가 있으면 그 덕분에 다섯 명이 먹고삽니다. 그런데 훌륭한 예술가 한 명이 있으면 50만명까지 먹고살 수 있어요. 지금 한국이 K팝 등 한류산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예술가 개개인을 실질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 겁니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사진)은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20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문화와 한국경제, 그리고 한류’ 세미나에서 “한국은 지금 문화와 문명이라는 두 개의 금광 위에 앉아 있다”며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 소르망은 “삼성 휴대폰,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성공했지만 정작 ‘한국산’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 주저하거나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마케팅을 해왔다”며 “프랑스산 향수, 독일산 자동차를 사람들이 믿고 사는 것처럼 이젠 한국의 정보기술(IT)과 문화도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문화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보석’과 같기 때문에 순회전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야 하고, 산업의 압축 성장 스토리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의 한류 열풍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류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한국적인 게 아니라 글로벌 문화라는 것이다. 그는 “사실 K팝 팬들은 그것이 일본의 문화인지, 한국의 문화인지, 남미 어느 나라의 문화인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대중문화에 한국적인 요소를 융합해 한류 열풍을 불러왔지만 이것이 한국 문화의 세계화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류를 일시 유행이 아닌 고유 문명과 문화로 발전시키고 세계인을 감동시키려면 예술가 개인에 대한 지원을 통해 장기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1986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알고 있는 예술가는 백남준뿐이었어요. 지금은 작가 이문열, 영화감독 박찬욱 임권택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도 쑥쑥 크고 있고요. 그런데도 한국 사회가 이들을 별로 챙기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는 지난여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이우환 특별전을 예로 들며 “당연히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나서서 도와줄 줄 알았는데 전혀 지원이 없어 놀랐다”고 했다.

“좋은 책들이 번역되지 않고, 좋은 미술 작품이 해외 전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을 보며 한국이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일관성 있는 국가 브랜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 ‘다이내믹 코리아’ ‘하이 서울’ 등 다양한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런 중복된 브랜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진정한 홍보대사는 한국 예술가들과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 외국인들입니다. 해외 언론과 교수들을 한국에 더 많이 초빙해 역동적인 문화 교류를 해나가야 해요.”

그는 고용 창출과 연계되지 않는 문화는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빠른 속도로 겪었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관광, 서비스 등 문화산업 분야가 실질적인 일자리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 속에 수많은 일자리가 있어요. 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문화 분야에서 5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국경제의 미래도 밝아질 겁니다.”

김보라/김인선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