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은 썩은 물에서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매화는 엄동설한에 꽃을 피우지. 너는 어디에 있든 대한제국의 황녀라는 걸 잊지 말아라.”(소설 ‘덕혜옹주’ 중 의친왕이 덕혜옹주에게)

이복 오빠인 의친왕의 이 한마디가 평생의 짐이었을까.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비운의 여인이었다.

옹주 덕혜는 1912년 덕수궁에서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외로움 속에 살았으며, 4년 뒤엔 어머니 양귀인마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청소년기에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생각했던 탓일까. 몽유병에 조발성치매(정신분열증)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정략결혼을 통해 낳은 외동딸마저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그녀 곁을 떠났다. 이어진 이혼과 일본 정신병원 입원…. 죽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광복 17년이 지난 1962년에서야 고국에 돌아왔지만, 그를 반겨줄 조국은 없었다. 귀국 20년이 지나서야 대한민국 호적을 얻을 수 있었다. 실어증과 지병에 시달리던 덕혜옹주는 1989년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덕수궁에서 태어나 창덕궁 낙선재에서 23년 전 오늘 영면하기까지, 그 지척의 거리를 옮겨앉는데 7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