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답지 않게 왜 그래!” “나다운 게 뭔데?” 우리는 가끔 이런 대화를 한다. 우스갯소리로도 한때 유행했던 말이다. 한 사람은 상대방다운 모습이 있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과연 ‘나다운 모습’이 정해져 있는 건지 의심하는 듯하다. 20년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 ‘나다운 모습’이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했던 말이나 행동을 기억하면 실제로 자신이 했던 언행인지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줄리언 바지니의 《에고 트릭》은 ‘나다움(me-ness)’에 관한 책이다. ‘나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정불변하는 ‘본질’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런 게 없다면 도대체 ‘나다운 것’은 뭘까.

저자는 영국의 대중 철학자로, 관심 주제에 대한 논쟁에 기꺼이 뛰어드는 실천적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이런 명성에 걸맞게 지루하지 않은 다양한 실제 사례들로 만만치 않은 철학적 주제를 돌파해 나간다. ‘나다움’에 육체가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억과의 관계를 얘기하기 위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나’를 설명하는 본질의 후보군으로 저자는 육체와 뇌, 기억 그리고 영혼을 꼽고, 하나하나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인간은 동물일 뿐이며 때문에 육체가 자아를 구성하는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육체를 바꾼 성전환자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나다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성별이 바뀌었음에도 이들 삶의 어떤 부분들은 그대로 이어져 자신을 구성한다. “과거를 생각하면 너무 소중해서 줄곧 간직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그 순간을 경험했던 때와 같은 눈으로 지금도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나는 같은 나입니다.” 성전환 후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드루실라 말랜드 씨의 말이다.

그렇다면 ‘나다움’을 규정하는 건 그 사람의 기억일까.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 중 일부는 환자가 사망해도 슬퍼하지 않는다. 오래 전 기억이 사라졌을 때 이미 그를 보냈기 때문이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치매 환자 요양원을 운영하는 질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은 여전히 각자 성격에 따라 행동해요. 평생 공격적이고 거친 사람이었다면 여기서도 그렇게 하고, 유머로 상황을 극복하는 사람이라면 춤을 추며 상황을 헤쳐나갑니다. 치매로 인해 남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핵심이에요.”

다소 종교적이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영혼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우리가 육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영혼은 존재한다”는 신학자의 리처드 스윈번의 주장을 저자는 논박한다. 물리적 설명이 세계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혼이 있다는 게 증명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럼 ‘나다움’이라는 자신의 본질은 없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불변의 본질’은 없다. 우리의 자아는 시시각각 변하는 뇌와 육체, 마음의 활동의 ‘묶음’이다. 우리는 이 활동에 의해 구성된 구조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를 나로 만드는 단 하나의 변함없는 본질’이 있다는 속임수를 벗어버리자고 말한다. 그 속임수가 바로 ‘에고 트릭(Ego Trick)’이다. 물론 이 속임수를 벗어나도 삶 자체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는 가끔 생각하며 살 수 있다.

철학, 신경과학, 종교, 사회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설명이 빛을 발하는 건 자신이 실제로 사례를 발굴하고 취재했기 때문이다. 철학이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진짜 철학’으로 남아 있도록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