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知音之交'…바이올린 듀오 이색무대
바이올린은 욕심이 많은 악기다. 오케스트라 협연 때는 주도적으로 곡을 이끌고, 독주회 때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자신의 소리를 한껏 뽐낸다. 그래서 바이올린 듀엣 공연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급 비르투오소 둘을 연주회 내내 한 무대에서 본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씨(36)와 서울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뒤 바흐와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곡 전곡을 세계 최초로 완주한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씨(36)가 뭉쳤다. 이들은 오는 2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김수빈&백주영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경희대 음대 연습실에서 두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다. 사이좋게 펼쳐진 바이올린 가방 옆으로 큰 사이즈의 커피 두 잔이 놓여있다. 생후 7개월에 접어든 아이를 돌보느라 밤낮이 바뀌었다는 백씨와 어젯밤 뉴욕에서 막 날아와 시차적응 중이라는 김씨. 악기를 잡자 둘의 눈빛이 달라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진 현란한 연주는 밤이 깊도록 계속됐다.

“20년 지기라서 가능한 일이죠. 우정을 과시하고 싶었어요. 듀오 리사이틀이라고 해도 한 명씩 연주하고 마지막 1~2곡 정도 같이하는 건 있어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만 모든 프로그램을 짜는 건 거의 없죠.”

이들은 베리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듀오 콘체르탄츠’, 비에니아프스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에튀드-카프리스’, 모주코브스키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쇼스타코비치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악곡’, 사라사테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나바라’ 등을 연주한다.

백씨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듀오곡을 쓸 수 없어서 당대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작곡한 곡이 대부분”이라며 “비에니아프스키와 사라사테의 곡은 아름답지만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김씨도 “모주코브스키의 곡은 한 곡 안에 어두움 슬픔 달콤함 행복함 등 다양한 감정이 펼쳐지는 엄청난 곡”이라며 “생소할지 모르지만 한번에 귀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인연은 20년 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은 서울예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백씨가 유학을 떠난 곳이자 미국에서 태어난 김씨가 입학한 학교다. 둘은 ‘피 튀긴다’는 국제 콩쿠르 덕에 막역한 친구가 됐다. 1996년 함께 나간 세계 최고 권위의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김씨가 한국인 최초로 1위, 백씨가 3위를 했다. 김씨가 모나코에서 헨릭 세링 재단 커리어 대상을 받을 때 백씨도 본선까지 함께 올랐다.

백씨가 “유학 시절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외롭고 살벌한 콩쿠르에 같이 출전하며 동고동락했던 친구”라고 하자 김씨도 “(콩쿠르를 위해) 러시아 독일 미국 전역을 함께 다닌 여행 친구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도 해외 음악 페스티벌, 실내악 공연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아왔다.

둘은 연주 활동과 후학 양성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9세에 서울대 음대 교수가 돼 화제를 모았던 백씨는 7년째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고, 예일대와 경희대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김씨는 최근 피바디 음대 교수가 됐다. 서로 분주하지만 연습 내내 찡그리는 법이 없다. “표정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니까요. 바이올린끼리 듀오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죠.” (02)580-1300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