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상무중학교 네거리의 한쪽 건물 2층엔 ‘저 이정현, 광주시민의 성원에 웁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광주 서을 후보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이정현 의원의 사무실이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을 들으며 ‘황무지’에 뛰어들었던 그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려 광주에서 27년 만에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700여표를 얻었던 17대 총선(2004년) 때와 달리 이번엔 득표율 39.7%(2만8000여표)를 기록, 지역주의 벽 허물기에 희망의 빛을 던졌다.

‘의미 있는 도전’이라는 평가를 반영하듯 해단식이 열린 지난 14일 그의 사무실엔 시민 수백명이 몰려 낙선을 아쉬워했다. 해단식에 앞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선거 기간 내내 울었고, 낙선한 뒤엔 더 울었다. 낙선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라며 “광주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왜 울었나.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선거 기간 광주시민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성원과 사랑을 받았다. 이번엔 원이 없을 정도로 선거운동을 했다. 처음엔 배신자 취급을 받다 막판엔 몰려들던 시민들의 눈빛과 애정 어린 환호를 잊을 수가 없다. 떨어져서 우는 게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잃은 건 ‘국회의원직’이지만 지역민들의 ‘사랑’을 얻었고 또 그동안 내가 지역을 위해 발벗고 나서온 일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역장벽은 여전했다.

“높은 벽을 실감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지역구도 타파는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요구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지역장벽을 깨뜨리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과거 독립이나 정부수립 산업화 민주화 등이 시대적 요구였다면 이제는 국민통합이 우리가 꼭 이뤄내야 할 절대명제다. 현실의 벽도 실감했지만 희망도 함께 봤다. 지역민들의 성원에서 머지않아 망국적 지역구도도 해소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왜 하필 광주였느냐는 얘기도 들었을 텐데.

“수도권에서 출마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지역을 위해 일하고자 정치를 선택했지 정치를 하기 위해 지역의 일을 한 게 아니었다. 정치는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지만 ‘지역 일’은 앞으로도 내가 활동할 수 있는 한 계속해야 할 일이다.”

▷2004년에 비해 엄청난 득표를 했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본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지역정치 지형은 이번에도 크게 변한 게 없다. 아직도 광주에선 민주통합당, TK(대구·경북)에선 새누리당의 싹쓸이가 여전하다. 나는 광주에 대한 사랑을 17년간 지속해왔다. 아직도 부족해 떨어졌지만, 이런 진정성이 지역구도의 높은 벽을 언젠간 결국 허물어내게 될 것으로 본다.”

▷‘호남예산 지킴이’ 구호가 통한 것 같다.

“지역 언론에서 그런 구호를 붙여줬다. 지역구의 예산만 관심을 갖는 다른 의원들에 비해 내가 그동안 여수 신안 등 다른 호남지역의 예산을 적극적으로 따내온 것을 평가해준 것이다. 지역구도에 기대 표를 얻은 뒤 지역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이해에 몰두했던 일부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어 일부러 구호로 내세웠다.”

▷아쉬움은 없나.

“왜 없겠는가. 당선이 됐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테…. 하지만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건 꼭 정치라는 수단만을 통해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변함없는 것은 호남발전을 위해 다양한 구상을 현실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 탕평인사를 이끌어 낸다든지 남해안 해양관광산업과 광주 문화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 등이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대구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선거 유세 내내 나와 같이 (지역주의 타파 사례로)묶여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자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반대당이라 당선되라고 공개적으론 말은 못했지만.(웃음) 나는 김 의원이 ‘한국의 토니 블레어’라고 생각한다.”

▷향후 정치 계획은.

“지난 30여년간 강산이 세 번 변하도록 요지부동인 호남정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할 작정이다. 호남정치에도 이젠 경쟁의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 새도 양 날개를 가져야 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지역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고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는데 대선에서 역할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름대로 역할을 할 작정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원칙과 정도, 시스템을 중시하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으려는 박 위원장의 정치포부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정현 의원 약력

△1958년 전남 곡성 출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위 총간사 △한나라당 16대 대선전략기획단장 △17대 총선 광주서을 후보 △17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박근혜 후보 대변인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예산결산특별위원

광주=최성국/김재후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