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침체가 지속되자 최근 들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DTI 규제로 인해 주택 구매 수요가 위축되고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어 상당수 주택시장 참가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규제 폐지를 주장하는 주된 논거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DTI 규제의 본질에 비춰볼 때 이런 주장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DTI 규제의 근본 목적은 주택 구입자금 조달을 어렵게 해 주택 수요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며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DTI 준수 요구는 차입자가 자신의 상환능력을 감안해 부채를 조달하도록 하는 규제이다. 따라서 DTI 준수는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모든 종류의 대출에 공히 적용되는 금융의 기본원칙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 고도 성장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산 가격, 특히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항상 오른다는 소위 부동산 불패 신화가 형성돼 있다. 차입자와 대출 금융사 모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에 근거, 차입자의 상환능력은 도외시하고 담보로 제공되는 주택의 가치에 지나치게 의존해 대출을 결정해온 것이다.

사실 이는 주가 상승을 예상하고 차입한 자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름없는 매우 위험한 행위다. 특히 고령화의 진전과 저성장 기조의 정착 등 향후 경제 환경 변화로 인해 주택 가격이 추세적 상승세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면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은 매우 위험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주택 가격, 특히 DTI 규제가 실시되고 있는 수도권의 주택 가격은 일반 가계가 6년치 소득을 모두 투입해야 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계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득에 비해 상당히 과도한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록 부채 부담이 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하더라도 기대한 바와 같이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우 발생하는 자본이득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으나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는 경우 차입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수단은 담보 주택을 처분하고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다.

시가의 절반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극단적으로 주택 가격이 절반 이하로 하락하지 않는 이상 금융회사가 큰 손실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계의 입장에서는 부채 상환을 위해 주택을 처분함으로써 가장 큰 자산을 잃을 뿐 아니라 당장 주거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상당수의 가계가 상환능력을 벗어날 정도의 주택담보대출 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시장에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 대규모 연체와 담보 주택 처분이 발생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나아가 대량의 담보 주택이 일시에 처분되는 경우 주택시장이 적어도 일시적으로 기능을 상실해 주택 가격이 폭락하고 궁극적으로 채권 금융회사의 대규모 손실로 귀착될 수도 있다. 이런 연쇄반응이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의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은 1980년대 초반 노르웨이 등 북구 제국의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가계가 주택 구입을 희망하는 경우 이를 실수요자라고 부르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구매 능력이 뒷받침되는 구매 의사만을 수요로 취급한다. 이런 원칙은 주택에도 해당되는데 현재 또는 미래 예상되는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는 주택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 비록 현재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가계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실수요자로 간주할 수 없으며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주택을 구입하는 투기적 거래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상환 능력이 부족한 가계에 대해 자금을 대출해주면서까지 주택 구입을 부추기는 것은 투기를 조장하는 것이며 비도덕적이기까지 한 처사일 수 있다. 또한 DTI 규제가 적용되더라도 대출 기간을 15년 내지 30년가량으로 충분하게 늘려 잡는 경우 그에 상응해 대출 가능 금액이 증가하므로 규제 자체가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실수요자들이 다 이렇게 집을 장만한다. 우리라고 예외가 돼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몰론 상환능력이 검증되는 경우에만 대출하는 것은 금융회사가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자체적인 관행으로 확립해야 할 것이지 지금과 같이 감독당국이 명시적 규제를 통해 강제할 것이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외국의 경우에도 그런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차입자와 금융사 모두 담보 주택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차입자의 상환능력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잘못된 행태가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 있어 규제를 통해서라도 이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은 상환능력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대출 결정에서 핵심적인 절차로 확립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지 부동산시장의 부침에 일희일비하여 DTI 규제의 변화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수도권에 한정돼 시행되고 있는 규제를 전국으로 확대 실시해 금융회사의 대출관행이 상환능력 중심으로 개선될 때까지 굳건하게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DTI 상한을 적절하게 설정하는 경우 부동산시장에 별다른 충격을 가하지 않고도 규제를 수도권 이외의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감독 당국과 금융회사들은 대출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최근의 금융시장 경향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며 금융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도 DTI 규제 유지는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박창균 <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미소금융 중앙재단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