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 회장 "한국기업 강점은 오너경영서 나오는 속도·집중력"
196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컨설팅회사 ‘롤랜드 버거’를 창업한 롤랜드 버거 명예회장(75).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롤랜드 버거는 유럽계 컨설팅 회사 중 최대 규모이며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과 함께 세계 3대 컨설팅 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버거 회장은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할 한국 대기업들을 비판하고 옥죄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당장 고기를 얻겠다고 우유를 계속 생산할 젖소를 죽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까지 유럽 재정위기가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2001년 유로화가 공식 도입되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탄생했습니다. 유로존의 성장률은 지난 10여년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역 불균형이 문제였습니다.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은 무역 흑자를 내는 반면 그리스 등 남유럽은 대규모 적자에 허덕여 왔어요.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재정이 많이 쓰이며 지금과 같은 위기가 오게 됐습니다.”

▷유럽 재정위기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은 결코 유로존이 붕괴되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위기인 건 맞지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혹독한 구조 조정을 전제로 2~3년 뒤면 유럽은 재정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큰 위기 상황에서는 이미 벗어났다고 할 수 있지만 빠른 성장세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완만한 경기 회복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빠른 성장이 전 세계 경제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스 등이 파산 위기에 이른 것은 과도한 복지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과도한 복지는 재정위기 국가들의 공통점입니다. 독일 등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복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개혁에 나섰습니다. 독일은 2003년 ‘하르츠 개혁안’을 통해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줄이는 등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켰습니다. 육아수당 등 복지 지출도 줄였고요. 그러나 국민들 표를 의식한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최근에야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복지 공약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금 없는 복지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공약이 공짜로 이뤄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증세는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세금을 늘리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곧바로 약해집니다. 정치인들이 기업에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이익까지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만약 내가 한국 사람이라면 혁신적이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의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한국 경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주역입니다. 지금도 대기업들이 많은 중소기업을 먹여살리고 있습니다. 사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본분을 다한 것입니다. 경제 교육이 취약했던 나라들에서 대개 기업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영권을 승계하는 오너경영에 대해서도 비판적 여론이 있습니다.

“오너경영은 기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 채택하는 플랫폼과 같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너경영으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는 것입니다.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오너경영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일본 소니가 지금처럼 몰락할지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항상 냉정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기업을 비판하는 데는 ‘시샘’이 깔려 있습니다. 오너경영자는 항상 길게 보고 사업을 준비합니다. 또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합니다.”

▷한국 기업의 강점과 약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솔직히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약점을 찾기내기가 어렵습니다. 혁신적이고 경쟁적인 풍토가 한국 기업의 특징이죠. 또 한 사업을 시작하면 속도와 집중력이 엄청납니다. 오너경영의 강점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지요. 기업 규모가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혁신을 통해 얼마나 좋은 제품을 빨리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합니다.”

▷북한의 위협이 여전합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북한 때문에 한국 경제가 저평가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나라가 제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북한의 위협은 자신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일종의 투정일 뿐이에요.”

▷한국 경제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미 언급한 규제 완화와 함께 필요한 것은 좀 더 과감한 개방입니다. 단순히 외국 기업의 진입만 허용하는 게 개방이 아닙니다. 외국 기업들이 몰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지 논쟁을 보면 ‘분배는 성장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케이크를 어떻게 나눠 먹을지 고민할 시간에 더 큰 케이크를 만드십시오. 그럼 어떻게 나눌지 싸울 필요없이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롤랜드 버거 명예회장은

獨총리들 경제자문…세계적 컨설턴트

롤랜드 버거 회장은 헬무트 콜,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등 독일의 전현직 총리들의 경제자문 역할을 해온 독일 최고의 컨설턴트로 평가받는다.

그는 1962년 뮌헨의 루드비히 막시밀리안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창업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와 미국 보스턴 등에서 미국계 회사의 컨설턴트로 일했다. 뮌헨 공과대에서 전략 마케팅과 광고론을 강의했으며, 1990년에는 동·서독 통일 컨설팅을 진행했다. 1996년 브란덴부르크 공과대에서 기업경영학 교수를 맡기도 했다. 2007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자문역을 했다.

현재는 독일 연방정부의 전문가 그룹과 유럽 재정위기 대책회의 멤버다. 2008년 롤랜드 버거 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재단의 기부총액은 5000만유로(750억원)에 달한다. 롤랜드 버거는 전 세계 34개국에 2700명의 컨설턴트를 둔 세계 3대 컨설팅 회사다. 정부의 산업 정책과 자동차 중공업 분야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서울 지사를 열었다.

서욱진/김대훈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