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를 두 번 죽인 겁니다. 경찰이, 112신고센터가 우리의 믿음을 죽여버렸어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9일 오전 10시40분께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9층 접견실에 10여명이 둘러앉았다. 경기도 수원시 지동에서 지난 1일 발생한 20대 여성 토막살해사건 피해자인 A씨(28)의 유가족들과 조현오 경찰청장이었다.

조 청장은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유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성난 유가족들이 경찰의 ‘부실수사-늑장대응-거짓해명’을 조목조목 성토했기 때문이다. 한 유가족은 “수원중부경찰서장이랑 형사과장을 대기발령시켰던데, 대기발령이란 게 대기시켰다가 다시 기용한다는 뜻 아니냐. 파면하고 구속수사하는 게 당연한 처사 아니냐”고 소리쳤다.

또 다른 유가족은 “경찰들이 발표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양파 껍질 벗기듯 계속 다른 얘기만 하면서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귀갓길에 한 조선족의 집으로 납치된 A씨가 목이 졸려 처참하게 토막살해됐지만, 경찰은 뻔히 드러날 거짓말과 해명만 늘어놓았다는 성토였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죄인처럼 앉아 있던 조 청장이 “다 내 책임이다. 송구스럽다. 감찰조사 결과에 따라 파면도 가능하고, 구속수사도 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소용 없었다. “경찰이 거짓말하고 은폐하고 축소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내가 관두는 상황까지 왔는데, 이 마당에 뭘 더 숨기겠느냐”는 읍소도 유가족들의 울분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람이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경찰은 졸고… 이러니까 검찰이 경찰을 무시하는 것”이란 질타만 이어졌다. 경찰은 지난해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당당히 수사 주체로 인정받았지만,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 간 기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은 그동안 검찰에 집중된 수사권을 경찰이 나눠가져야 치안질서가 온전하게 확립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경찰의 ‘무능·부실수사’는 경찰이 과연 온전하게 수사권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치안 총수가 부정부패와 부실수사 파문으로 2주 연속 대(對)국민사과를 하고,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추궁 당하는 구차한 상황이 반복되는 한 경찰은 수사 주체는커녕 존립 이유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

김선주 지식사회부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