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투표는 미래를 설계하는 행위
정치 전문가들조차 “이런 선거는 난생 처음”이란 평가를 내린 4·11 총선이 마침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오차 범위 내에서 격전 중인 초접전 지역이 늘어가는 데다, 부동층의 표심(票心)도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요, 더 더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한 디지털 세대의 행보 또한 예측불허이기에 선거 판세 읽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선거를 하루 앞둔 오늘, 지금까지의 선거 과정을 돌아보자니 아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정국에 터져 나온 민간인 사찰의혹과 ‘나꼼수 후보’의 막말 파문 탓에, 이번에도 모든 정당이 공약했던 참신한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상대 후보를 향한 흑색선전과 비방으로 얼룩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돼갔음은 진정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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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초강국답게 후보 공천 과정에 야심차게 도입한 모바일 투표가 새로운 양식의 선거부정 도구로 부상(浮上)했음 또한 간과해선 안 될 듯하다. 4년 전 미국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즈음, ‘디지털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실험이 성공리에 이뤄지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개가를 올렸음을 기억할 때, 우리네 현실의 한계가 뼈저리게 다가옴은 나 개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던 자원봉사자들의 거대한 물결은 기존 선거문화의 패러다임 혁명을 통해, 변화를 갈망하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디지털 소통 공간에 멋들어지게 담아내, 최단시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은 한 편의 감동적 드라마였고, 드라마에 출연했던 이들 모두는 너나없이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런 감동을 가져오기까지에는 오프라인에서 구축된 미국식 민주주의의 탄탄한 기반이 있었을 터이다. 오랜 세월을 다져온 그들의 성숙한 선거문화 토대가 온라인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었음을 기억할 일이다.

결국 선거는 단순히 투표장에 가서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을 향해 한 표를 던지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투표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성찰(省察)하며 미래를 설계해보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할진대, 이제 우리도 경제발전 수준 및 시민의식 수준에 부응하는 성숙한 선거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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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복장을 한 선거유세원들의 거리 율동,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소음에 가까운 선거유세 차량, 곳곳에서 남발되어 곧장 쓰레기통으로 사라지는 후보자들의 명함, 건물 전체를 뒤덮은 볼썽사나운 현수막 등은 우리네 선거문화가 여전히 유권자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현상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온라인을 통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구현이 아직은 요원하게 느껴지는 건, 현실에서 경험하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공고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히 건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은 역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일 터임은 불문가지다. 다만 선거철만 되면 이런저런 바람(風)을 타며 휩쓸리는 쏠림의 문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동조성의 문화, 여전히 고질적인 연고주의(緣故主義) 문화가 디지털 혁명을 타고 더욱 가속화되어 우리의 선거문화를 퇴행시키는 일만은 필히 막아야 할 것이다. 투표장에 가는 것 못지않게 어떤 마음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리란 건 재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다수의 중지(衆智)는 개인의 탁월함보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이미 다양한 맥락을 통해 검증된 바 있음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우리네 선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동안의 결과를 돌이켜보면, 거대한 여당 힘이 긴급히 필요할 때는 여당에 표를 몰아주고 여당에 대한 견제가 절실히 요구될 때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만들어내는 절묘한 선택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국민 다수의 중지가 앞으로의 4년을 위해 합리적이고도 지혜로운 선택을 하리라 굳게 믿는다.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