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8년째 장모와 함께 살고 있다. 장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집안에서는 속옷 바람으로 다닐 정도로 허물없이 지낸다. 장모와 편하게 함께 사는 나를 주변에선 의아해하기도 한다. 시가에서 며느리가 그러하듯 사위 또한 처가에서 좋은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러니 내가 장모에게 무척이나 잘하는 사위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18년을 한 지붕에서 지내며 한번도 큰소리 없이 지내고 있으니, 남들 보기에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장모를 처음 모시게 된 것은 필요에 의해서였다. 결혼 후 아들과 딸이 태어났고, 우리는 장모에게 손자들을 돌봐달라 청했다. 장모와 함께 살기로 하면서 나는 몇 가지 룰을 정했다. 그 첫 번째가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었다. 일찍 고향 부산을 떠나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 온 나로서는 진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지난 18년을 되돌아보면 나와 장모는 무척 잘 지내온 반면 아내와 장모는 크게 다툼을 벌인 적이 왕왕 있었다. 난 그때마다 장모 편을 들었다. 아들이 어머니 편을 들면 아내에게 미운털 박히기 십상이지만, 장모 편을 들면 당장은 아내가 서운한 티를 내도 결국은 득이 됐다. 소소한 선물이라도 아내보다 장모를 먼저 챙겼더니, 초반부터 처가 식구들로부터 인기를 딴 셈이다. 장모님과 잘 살기 요령을 일찍이 터득한 것인데, 조금만 신경 써도 몇 배로 돌아오니 투자 대비 이익이 큰 투자였다.

살다 보면 본인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다. 투자의 세계에도 그런 기회가 있다. 나는 장기투자가 그러하다고 확신한다. 인간의 본능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들에 휘둘려 본래 정해 놓은 목표를 잊게 한다. 장기투자는 그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관된 노력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장모와의 장기투자에서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다. 아이들 돌보기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과 잘 모실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감이 지금까지 동거를 가능케 했다. 장기투자를 시작할 때 누구나 5년, 10년의 변치 않는 마음을 다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잘 지켜지는 경우는 연금상품처럼 납입 기간 등 외부적인 제약조건이 있을 때다. 일단 3년 고비를 넘기고 나면 5년, 10년은 쉬워진다. 요리조리 재는 단기투자보다 결과가 훨씬 좋다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이후의 시간은 기대감으로 쉽게 간다.

사람의 관계란 모름지기 상대적이어서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잘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장모님과 즐겁게 살아 온 것도 그 분이 나를 아들처럼 대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이제서야 솔직히 말한다. 내 아이들을 키워주고, 한때 몸이 불편했던 내 아내를 돌보고, 나의 밥상과 옷매무새를 보살핀 장모 덕에 나는 이만큼 올 수 있었다. 아주 가끔은 불편하기도 했던 장모님과의 동거, 지나고 보니 내 인생 최고의 장기투자였다.

조웅기 <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cho@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