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황인철
'아기 받는 남자'의 맛있는 인생 레시피
게스트로 섹슈얼. 요리 솜씨로 여성을 매혹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혹은 여자 친구를 위해 요리하는 남자는 여자들의 ‘로망’이다. 여기, 남자들에게 앞치마를 두르라고 당당하게 권하는 남자가 있다.

“아내의 생일날, 미역국 한 번 끓여주면 그 자체로 ‘보험’드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따지면 그는 지금까지 숱하게 ‘보험’에 들었다. 언젠가 ‘마눌님(그가 아내를 지칭하는 표현)’의 생일을 맞아 준비한 ‘거한’ 상차림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남자들에겐 이미 ‘공공의 적’이 됐을 정도다.

‘아기 받는 남자’로 유명한 그는 산부인과 의사다. 순천향대 구미병원 황인철(40) 교수가 주인공. 요즘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구미와 서울 병원을 오가며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고 KBS 1TV ‘아침마당’ 등 고정으로 출연하는 방송과 각종 케이블 TV 출연, 백화점 문화센터 출강에 요리책 출간까지 하는 일도 다양하다. 이런 와중에 한 달 전 서울 강남 삼성동에 아예 ‘아기 받는 남자’라는 이름으로 카페까지 오픈해 1주일에 서너 번 서울과 구미를 오가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다.

인터뷰는 그의 카페에서 이뤄졌다. 모던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그곳엔 황 교수의 아내가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생일 선물 대신 ‘커피머신’을 받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한다는 아내는 카페에서 ‘커피 담당’이다. 커피 내리는 아내와 요리하는 남편의 공간인 셈이다.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말이에요. 막상 오픈하고 나니 신경 쓰이는 게 너무 많네요. 제가 없을 때 아내와 처형이 맡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요리 재료 공수에서부터 레시피까지 꼭 제가 해야 할 일들이 있거든요. 이곳에선 제가 개발한 ‘아기 받는 남자’만의 메뉴들을 맛보실 수 있죠. 병원에선 항상 여자 환자들만 만나다가 이 공간이 생긴 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힘들지만 보람 있어요.”

아내 위해 차린 생일상으로 ‘공공의 적’

단순히 ‘의사’로만 살았던 그의 인생이 이토록 맛있어진 건 요리를 시작하면서다. 어렸을 때부터 손맛 좋은 어머니의 음식을 맛보며 요리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는 초·중·고 시절 캠핑이나 야영을 갈 때마다 자진해 음식 담당을 맡았다. 의대에 진학 후 그 힘들다는 인턴·레지던트 시절에도 그는 요리 채널을 보며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갔다.

본격적으로 ‘요리의 길’을 걷게 된 건 7~8년 전이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가 생겼을 때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위한 ‘아빠표’ 요리가 시작된 것이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 날엔 ‘물 만난 고기’처럼 하루 종일 주방에서 살았을 정도”다.

“옛날 분들이 다 그렇듯 어머니도 제가 요리하는 걸 싫어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요리하는 남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는 건 그 모습이 어색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요리하는 걸 전혀 어색해 하지 않는데 아이 친구들은 어색해 한단 말이죠. 집에서 그런 광경을 안 봐서 그런 겁니다. 제 주변엔 저처럼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아 술 마시면서도 ‘김치 담글 때 무슨 젓갈을 쓰느냐’ 이런 대화를 해요(웃음).”
요리하면서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그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수시로 ‘입 호강’을 한다.

“앞치마 두른 남자들 많아졌으면”

집 안에서의 요리 실력이 ‘공공’으로 퍼져나간 건 3년 전 인터넷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요리를 테마로 한 그의 블로그 ‘아기 받는 남자의 아주 특별한 레시피’는 음식과 잘 버무려진 다양한 스토리 덕분에 오픈하자마자 누리꾼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와플 하나를 올려도 예전에 그가 먹었던 와플 이야기를 곁들이고 김치볶음밥 레시피에도 첫 소개팅에서 먹어본 김치볶음밥의 추억을 양념으로 치는 식이다.

음식 만들기에서부터 사진, 그리고 한 편의 에세이와 같은 글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주 많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타이틀도 스포트라이트에 한몫했다. “전공을 살려 여성들이 꼭 알아야 할 임신에 관한 상식들, 여성 건강에 관한 지식 등 디테일한 정보들을 올려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의사가 요리한다고 하니 더 건강한 음식인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장점이겠죠.”

‘느낌’만이 아니라 그의 요리는 건강함 그 자체다. 아빠의 요리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고 또래보다 큰 편이라는 게 ‘건강한 요리’의 한 증거다. 반드시 싱싱한 재료를 쓰되 간을 세게 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그가 추구하는 요리 세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배가 고파 끓인 라면과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해 끓인 라면의 맛은 천지차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따로 요리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그의 요리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같은 레시피라고 하더라도 누가 만드느냐, 어떤 재료에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요리는 재료를 속이지 않는 마음, 정성껏 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그건 자격증이 없습니다. 의사는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요리는 자격증 없는 어머니 요리가 가장 맛있는 법이죠.”

요리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과도 닮아 있다. 둘 다 ‘여성성’이 있다는 점, 세심한 배려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요리하는 의사로 소문나면서 여성인 환자들이 남자 의사인 그를 편안하게 대한다는 점은 뜻밖의 수확이다.

‘아기 받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그는 요리를 통해 또 하나의 인생 목표가 생겼다. 임신했을 때 먹으면 좋은 요리, 산후 다이어트에 좋은 요리 등을 개발해 임산부들의 건강에 큰 도움을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해주면 좋을 요리들도 포함된다. 그 첫 번째 ‘실행서’가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아내가 샤워할 때 나는 요리한다’라는 제목의 요리책이다. 아내의 샤워 시간 30분 동안 남편이 ‘뚝딱’ 만들 수 있는 야식 레시피들이 맛깔난 글과 함께 선보이면 또 한 번 남편들의 ‘적’이 될 듯하다.

“아웃도어 요리도 제 주 종목인데 조만간 캠핑 관련 책 작업도 하게 될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2년 넘게 캠핑을 다닌 ‘캠핑족’인데 밖에 나가서도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한 상 차려 먹거든요. 무엇보다 남편들이 집 안에서 요리하는 걸 불편해 하는데 밖에 나가면 요리하기 좋은 환경이 되니 남편에게 앞치마 두르게 하는 데도 좋죠(웃음). 도심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캠핑을 가면 흙을 만지고 노니 그것도 너무 좋은 일이고요.”

그는 “앞으로 앞치마를 두르는 남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남성 독자분들, 듣고 계신지?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