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탈리아에서 거세가 유행했던 건 ‘카스트라토(Castrato·여성의 음역을 가진 남성 가수)’를 많이 키워내기 위해서였다. 여성의 성가대 참여가 전면 금지됐던 탓이다. 변성기 전 소년을 거세하면 성인이 돼도 성대가 자라지 않아 힘차면서도 아름다운 고음을 낼 수 있었다. 당시 매년 6000여명의 소년이 거세됐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어졌던 18세기 가수 ‘파리넬리’도 카스트라토였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역시 어릴 적 거세될 뻔하다 위기를 넘겼단다.

동양에서 거세는 코를 베는 의형,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 등과 맞먹는 극형으로 통했다. 이를 ‘궁형(宮刑)’이라 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한 장수를 변호했다가 한무제의 분노를 사서 궁형에 처해졌다.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사기를 완성하려 살아남았다고 한다. 스스로 거세를 택해 내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조정의 비밀정보망을 장악해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호구지책이 더 많았다. 생존형 거세가 주류였던 셈이다. 내시가 되려면 남근과 고환을 몽땅 들어내야 했기에 출혈 과다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요즘엔 아동대상 성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거세가 동원된다. 약물을 투여해 성욕을 감퇴시키는 화학적 거세가 많다. 덴마크가 1973년 도입했고 스웨덴 캐나다 스위스 독일 핀란드 체코 미국 일부 주 등이 뒤따랐다. 대부분 본인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폴란드는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미 텍사스주 등에선 본인 동의 아래 외과적 거세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첫 화학적 거세 대상자가 나왔다. 아동성폭력범인 45세 박모씨에게 23일부터 3년간 3개월마다 한 번씩 성충동 억제제 ‘루크린’을 강제 투여하게 된다. 2008년 법안 발의 때는 본인 동의를 전제로 했으나 강력 성범죄가 빈발하자 동의 조항을 뺀 채 국회를 통과했다. 박씨가 거세 효과를 상쇄하는 약물을 복용할 경우 징역과 벌금이 추가된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가 평생 겪을 고통을 감안할 때 화학적 거세의 시행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인권침해 논란도 여전하다. 우울증 심폐질환 골다공증 간기능 이상 같은 부작용 우려도 있다고 한다. 재범률이 3~5%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여느 성범죄자 재범률과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도 나왔다. 어떻든 화학적 거세로도 아동 성범죄가 근절되지는 않을 것 같다. 듣기에도 거북한 거세라는 징벌 수단까지 동원해야하는 세상이 걱정스럽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