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논란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 춘추시대 명 재상으로 꼽혔던 정(鄭)나라의 자산에 관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가 수레를 타고 강을 건널 때였다. 백성들이 옷을 걷고 맨발로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자산은 자기의 수레에 사람을 태워 수차례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백성의 고통을 함께하는 재상이라는 칭찬이 있을 법하지만, 맹자의 평가는 냉정했다. “은혜로우나 정치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행위(惠而不知爲政)”라고 맹비난했다.

일시적으로 백성의 환심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다리를 놓아 많은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 진정한 지도자라는 게 맹자의 지적이다.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포퓰리즘적 대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성을 위한 측은지심의 마음을 갖되, 일시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담은 게 아닐까.

심판은 유권자의 기본 책무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 때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는 시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옥수수도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 개혁을 위한 지지 확보 차원이었는데, 이것이 포퓰리즘의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지만 로마인들은 그라쿠스 형제를 사형시켰다. 독재자가 되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4·11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권은 이번 선거를 겨냥해 한바탕 포퓰리즘 경연을 벌이고 있다. 반값 등록금, 무상교육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달콤한 유혹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야를 가릴 것이 없다. 토끼는 자기 집 주변의 풀은 뜯지 않고, 멀리 나가서 먹는다고 한다.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표에 눈 먼 정치권은 주변의 풀만 손쉽게 뜯으려 한다.

결국 심판의 몫은 유권자들에게 돌아왔다. ‘묻지마’식 투표에서 벗어나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유권자의 기본 책무다. 이전까지의 투표행태를 보면 냉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8년 18대 총선 때 후보자의 공약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투표한 유권자는 15%에 불과했다.

공약집 한번이라도 살펴봐야

또 한국선거학회가 18대 총선 직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선거가 유권자의 역할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76.4%로 나타났다. 투표가 집단적인 결정을 도출하는데 불완전한 수단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대의제에 대한 이런 회의는 곧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무늬만 멋진’ 후보와 ‘무늬까지도 멋진’ 후보를 분별해 낼 수 있는 유권자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에 대한 영향력은 대통령보다 의원이 더 크다는 게 노암 촘스키의 지적이다. 그만큼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링컨은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고 했다. 다만 목표 없이 쏘아대는 총알은 쇳조각에 불과하다. 내 한 표가 공약이 아닌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좌우된다면 휴지조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선 권력은 아래로부터 나온다. 선심 공세를 가려내고 더 긴 안목을 가진 정치인을 고르는 것은 유권자의 의무이자 권리다. 내 한 표의 힘은 미약할지 모르나, 심사숙고해 결정한 선택이 모여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11일 총선 전 지역구 후보와 각 정당의 공약집을 한번만이라도 펼쳐보자.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