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새터민) 중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들도 적지 않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따르면 1월 현재 공공기관, 공기업에서 일하는 새터민은 47명, 창업자는 222명이다.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훌륭하지도, 남한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지만 이들은 당당하게 경쟁하며 살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탈북자라는 틀에 갇혀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경쟁을 무서워 해선 안 되며 생계급여 등 지원에 의존하지 말고 실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남한에 대한 환상 버려라”
이현애 씨(43·여)는 올해 3년차 공무원이다. 안성시청의 유일한 새터민 출신 직원으로, 정책기획관실에서 지역 새터민들을 위한 지원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에 왔던 2005년엔 이미 30대 중반이었다. 대학을 갈 수도, 번듯한 직장을 잡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노점에서 타코야키(일본식 문어빵)를 팔고 운전학원 전단지도 돌렸다.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모습을 눈여겨 본 운전학원에서 강사 자격증을 따보라고 권했다. 운전학원 강사로 자리 잡은 뒤에도 평생교육원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사회복지사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안성시 공무원 채용 공고를 보고 기회를 잡았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이었다.
이씨는 “남한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버리고 노력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고 말했다. 많은 새터민들이 남한에 오면 당연히 누군가가 도와주고 번듯한 직장에서 폼나게 일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나도 한때 좋은 남자를 만나 쉽게 안주하려고 한 적도 있다”며 “남에게 의존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처절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쟁 두려워해선 안 돼”
새터민 전모씨(33)는 한국에서의 7년을 ‘시행착오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처음 한 일은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가족을 부양하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계비를 보내야 하는 그에겐 당장 돈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새터민인 데다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에게 돌아온 건 무시와 냉대였다. “똑같은 밑바닥 일을 하더라도 같은 말을 쓰는 동족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아내가 “한국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설득에 전씨는 발길을 돌렸다.
울산으로 내려갔다. ‘경쟁에 한번 뛰어들어보자’는 결심이 섰다. 대기업 3차 협력사에서 용접을 시작으로 기계제조 조립 선반밀링 등을 거쳤다. 모두 퇴근한 후에도 혼자 남아 연습하고 주말에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다. 기술이 손에 익고 자격증을 따자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현재 한 대기업 4년차 직원으로 연봉 6000만원을 받으며 선박기관에 필요한 시스템 중 하나를 설치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전씨는 정부의 생계급여 지원 의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생계급여에만 머무르면 나태해지기 쉽다”며 “보다 멀게 보고 어렵더라도 부딪치면서 경쟁하고, 실력을 쌓아야 더 좋은 미래가 보인다”고 충고했다.
◆“‘탈북자’라는 자격지심 버려라”
“어서오세요!” 남성전문 미용실 ‘블루클럽’ 서울 가양점에 들어서자 밝은 목소리가 반겨준다. 새터민 이영금 씨(39·여)는 10평 남짓한 가게에 직원 두 명을 두고 있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한 달 수입을 묻자 “대기업 직장인보다는 조금 더 버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씨가 미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하나원에서 본 신문 때문이다. 21세기 유망직종으로 피부관리, 미용을 꼽은 기사를 보고 하나원에서 퇴소한 뒤 바로 사설 학원에서 피부관리와 미용을 배웠다.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매장을 연 것은 2년 전이다.
지금 미용실은 이씨가 3년간 일했던 곳이다. 손님별로 원하는 헤어스타일, 미용실에 오는 빈도, 성격 등이 파악되고 일이 손에 익을 때쯤 점장이 건강을 이유로 가게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미용 기술과 매장 관리에 자신이 있어 용기를 냈다. 창업자금은 현대차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받았다. 대출금은 매장을 연 지 1년반 만에 70% 정도를 상환했다.
새터민이라는 이유로 손님들에게 상처받는 일은 없을까. 이씨는 “제 말투 때문에 고향을 묻는 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당당하게 탈북자라고 말한다”며 “내가 그렇게 말하면 손님들 역시 무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미용실 2호점을 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새터민들도 좋은 직장, 폼나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경력과 학벌이 부족하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한국사회의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기술이 있다면 새터민들도 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