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 한 해 발행하는 외화채권의 규모는 100억달러(11조3000억원)가 넘는다. 작년에도 103억달러어치 채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채권을 발행해 얻은 외화를 국내 기업들에 다시 빌려주는 것이 수출입은행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김윤영 수출입은행 부행장(56·사진)이다. 외화채권 발행 등 국제금융 부문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에는 아시아 금융회사들 가운데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지 화폐 리얄화로 채권을 발행해 세계 금융시장이 수출입은행을 주목하기도 했다. 1979년 입사해 10여년 동안 국제금융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에게 최근 외화채권 발행 동향과 향후 세계 경기 전망을 들어봤다.

○“큰손이 돌아왔다”

김 부행장은 최근 외화채권 발행 시장에 “큰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초까지만 해도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 때문에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했지만 이달 들어 급격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큰손들은 스스로 ‘우리의 입장(stance)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big change)’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부행장은 “유로존 재정위기 우려가 다소 줄어들었고 미국 경제지표들이 나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굉장히 큰 기관에서 ‘한국과 같은 곳에서 수출입은행처럼 이름 있는 발행자의 채권을 사고 싶다’며 4억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큰손들의 채권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금리도 떨어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을 비롯해 국내 금융회사·기업들의 채권 발행·유통금리는 1월 초에 비해 평균 100bp(1bp=0.01%포인트)가량 낮아졌다. “앞으로 경기 전망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흐름이 ‘선진국 중심, 안전자산 중심, 단기물 중심’에서 ‘이머징마켓 중심, 장기물 중심’의 기조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다만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재정위기 우려가 다시 부각될 공산이 없지 않고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시장 조달금리 올해도 낮을 듯

수출입은행의 올해 외화채권 발행 전략에 대해 김 부행장은 “시장(윈도)이 열렸을 때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이 열리면 지금 필요한 것보다 다소 넉넉하게 미리 자금을 조달해 놓는 프리펀딩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자금조달 지역과 통화를 다각화하는 데도 힘쓸 계획이다. 특히 작년 수출입은행이 14억3000만달러를 조달한 우리다시본드(일본 개인투자자들에게 소액으로 판매하는 채권)에 올해도 상당한 물량을 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여파가 있었던 작년만큼 금리가 낮지는 않겠지만 올해도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좋은 조건에서 채권 발행이 가능할 것 같다”며 “작년 발행 규모 이상으로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작년 11월 수출입은행이 호주달러·뉴질랜드달러·브라질 헤알화·터키 리라화 등 4가지 통화 표시로 발행한 우리다시본드(만기 3~6년, 6억달러 규모)는 달러화로 직접 자금을 조달했을 때보다 50bp가량 금리가 낮았다.

브라질 헤알화 등 통화 강세가 예상되는 지역에서의 채권 발행도 추진한다. 김 부행장은 “달러로 스와프하는 시장에서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거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인 딤섬본드 등에 대해서는 “사모 발행 형식으로 이미 일부 발행한 상태”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초저금리 당분간 지속

김 부행장은 올해 국내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장기 고정금리 채권을 발행하기 좋은 여건이 형성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국채금리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며 “앞으로 조금씩 미국 경기가 좋아질 것이므로 지금이 발행하기 좋은 시기”라고 진단했다.

최근 가스공사가 30년 만기 고정금리 채권을 발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공기업 위주로 장기채권 발행 물량이 늘어나고 채권 발행 규모가 커지는 추세가 뚜렷하다”며 “외화채권 조달 시장에 새로운 판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