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통일부장관 "'인생 3막' 마지막 봉사…'실세'라니 어울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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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北로켓발사는 비상식적 행동…결단 못하고 관성대로 가는 것
中진출 기업 '보이지 않는' 사회봉사…중국인들, 한국기업 사랑할 수 밖에
사치스러운 생각 '경계'하려 나물밥 먹으며 초심 되새겨
"통일세는 걷지 않아…국민 마음이 담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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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생각 '경계'하려 나물밥 먹으며 초심 되새겨
"통일세는 걷지 않아…국민 마음이 담겨야지요"
봄의 문턱에 다가선 지난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류 장관이 고른 곳은 삼청동길 끝자락에 있는 다소 허름한 ‘고향보리밥’. 의외였다. 현 정부 최고 실세로 통하는 데다 현직 장관이어서 식사 장소로 한정식집이나 일식집을 떠올렸지만 이 집은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시골식당’과 다름없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재료의 맛을 살린 건강한 식단으로 주변에 있는 청와대나 감사원 직원들 중 단골이 적지 않다. 편하게 방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골랐다는 게 류 장관의 설명이다. 한쪽에 된장찌개, 우거지, 김치 등 기본 찬과 북어찜, 녹두전, 도토리묵 무침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시골(경북 상주) 출신인 그가 2008년 상반기 대통령실장 시절부터 자주 왔던 단골집이다. “사치스러운 생각, 고급스러운 것들은 의식적으로 경계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나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초심을 되새기게 됩니다.”
◆“정부 실세? 국가 위한 봉사자일 뿐”
류 장관에게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 ‘왕의 남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리학계의 석학,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실장, 주중국대사 등 이력도 쟁쟁하기에 그의 소탈한 입맛은 더욱 의외로 다가왔다. 류 장관은 업무상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호텔 음식점을 찾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직자가 비싼 음식을 먹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세’에 대한 생각을 묻자 “기자들이 아직 나를 잘 모른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화려한 수식어에 현혹될 나이는 지나갔습니다. 만 30세에 서울대 교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2010년 만 60세에 사표를 냈지요. 태어나서 30년간 공부하고, 이후 30년간 일을 했습니다. 그 이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세라는 말은 가당찮아요.”
류 장관은 최근 우리 사회에 봉사 문화가 빠르게 퍼져가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기업의 사회환원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 기업이 중국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가장 큰 비결은 위험을 무릅쓴 도전,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대사로 있던 시절 조사해봤더니 외부에 알리지 않고 지역 내 학교와 고아원 후원, 장학금 기탁 등의 활동을 하는 우리 기업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달려가니 이미 우리 기업이 복구활동을 위한 비용을 기부하고 간 뒤였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 기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임정순 고향보리밥집 사장이 “조금 전 목포에서 도착했다”며 참기름과 깨소금으로만 양념한 산낙지 접시를 손수 들고 왔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특별히 내놓는 메뉴란다. 얘기하는 데 몰두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류 장관에 대한 임 사장의 ‘애정’이 담겨 있다. 이어 고향보리밥의 대표 메뉴 보리밥이 나왔다. 묵직한 놋그릇에 콩나물 무나물 해초와 함께 파프리카, 적채, 계절채소 등 10여종의 채소가 푸짐하게 담겼다. 여기에 꽁보리밥이 나무바가지에 한가득 담겨 나왔다. 류 장관이 먼저 꽁보리밥과 기장쌀밥을 놋그릇에 덜었다. 여기에 된장과 고추장을 한 숟갈씩 넣어 비비는 게 일반적이지만 류 장관만의 특별 비법이 있다. “멸치젓갈을 반 숟가락만 넣고 같이 비벼보세요. 개운한 맛이 일품입니다.”
◆“남북관계 기복, 그래도 유연성 필요”
‘실세’이다 보니 주중대사, 통일부 장관 등 그가 새 직책을 맡을 때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이 대통령의 특명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중국대사 시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특명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저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며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없었다면 베이징에서 남북이 접촉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베이징에 간 지 석 달이 지나 이제 시내 지리에 좀 익숙했다 싶었는데 천안함 폭침 사건(2010년 3월26일)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대응이 마무리되고 중국 측에서도 ‘류 대사가 역할을 좀 해보라’고 권유하던 차에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 11월23일)이 터지더군요. 북한과 관계개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지난해 9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유연화 정책’을 내걸었다. 하지만 석 달 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북한은 대남관계를 중단했다. 유독 대북정책에 있어 운이 따르지 않는 듯하다고 이야기하자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며 빙긋 웃었다.
북한은 다음달 중순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남북관계 주무장관으로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남북관계가 풀리기 위해서는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내부가 안정돼야 한다. 아직은 북한이 기존의 ‘선군(先軍)’노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를 두고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북한의 비상식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봅니다. 현존하는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통일인데, 그 과정에서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노력해야지요. 함부로 낙관하지도, 쉽게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유연함이 중요합니다.”
그는 주중대사를 역임하면서 지방정부 24곳을 방문했을 정도로 현장 외교를 중시했다. 이렇게 다져진 중국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만찬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나란히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양 부장은 그에게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가장 진지하게 노력한 대사”라며 “영원한 대사”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최근 한·중 간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됐던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해법이 궁금했다. “‘조용한 외교’가 강조되는 것은 탈북자들의 신변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를 통해 보편적인 규범, 인권을 요구하면서 양국 간 물밑 협력으로 외교적으로 푸는 방식도 필요합니다.” 류 장관은 “대북정책, 외교 사안에서는 관계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게 국민들에게 비밀로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한반도 대운하’ 여전히 아쉽다”
류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이데올로그’다. 4대강 개발, 한반도 대운하 등 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의 이론적 토대가 그에게서 나왔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0년대 중반, 당시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던 류 장관에게 이 대통령이 자문을 구해오면서 시작됐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따른 촛불시위로 4개월여 만에 대통령 실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로서는 아픈 기억이다. 촛불정국 당시의 심경을 묻자 “내가 태어난 곳은 학교 관사”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부친이 선생님이어서 상주 중동 초등학교 관사에서 태어나 학교 운동장을 내 마당처럼 여기고 자랐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군복무를 하고 교수로 30년을 살았으니 일생을 학교에서 보낸 사람이죠. 아카데미즘의 본질은 ‘거짓은 기각하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는 거짓으로 곤경에 몰린 것이 개인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다행히 지금은 거짓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민들도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지요.”
4대강 개발, 한반도 대운하 포기에 대해서는 자신감과 함께 아쉬움도 드러냈다. “4대강은 이미 성공적인 사업이라는 게 증명됐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를 이론적으로 끌어온 사람으로서 아직도 ‘광주대구까지 배가 들어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면 문화적, 경제적으로 더욱 융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운하를 파고있어요. 하지만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니 존중해야지요. 훗날 국민정서가 가라앉고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 운하는 다시 논의될 겁니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제기되는 것을 보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정치는 잘 모른다”면서도 “우리 국민의 안목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은 이미 사안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있고 성숙한 의식이 있어요. 진실은 알려지게 돼 있습니다.”
◆“아픔을 넘어, 도전하라 청춘”
이날 식사의 마무리는 숭늉이었다. 보리밥으로 끓인 숭늉의 깊은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류 장관은 최근 전국의 대학을 찾아다니며 청년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지난주에도 전주, 대전, 울산 등을 다녀왔다. “교수하던 버릇이 나와선지 대학생들을 만나 대뜸 야단부터 쳤습니다.(웃음) 분단 상황에 안주하지 말라고요. ‘통일 세대의 주역이 될 너희가 통일에 회의적이고 우물쭈물해서는 안 된다. 청춘이라 아프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아픔을 넘어서서 도전해야 청춘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통일세는 걷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받을 것입니다. 기업의 돈도 받지 않을 겁니다. 정부와 개인의 피땀이 묻어 있는 돈이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 류우익 장관의 단골집 고향보리밥
서울 대표적 '꽁보리밥'집…묵 무침 · 녹두전 별미
서울 시내에서 ‘꽁보리밥’을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골밥상집. 임정순 사장이 1994년 삼청동 본인 집을 개조해 문을 연 뒤 19년째 소박한 밥상을 내오고 있다.
대표 메뉴는 보리밥. 놋그릇에 파프리카, 적양배추, 콩나물, 해초를 푸짐하게 담고 철에 맞는 나물을 곁들여 입맛을 돋운다. 나무바가지에 담겨 나오는 탱글탱글한 꽁보리밥과 노란 기장밥은 색다른 식감을 선사한다. 1인분 7000원.
도토리묵 무침과 녹두전도 별미다. 도토리 가루만으로 쑨 묵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부서지지 않고, 녹두를 직접 갈아 물만 추가해 부친 녹두전은 녹두 고유의 맛이 살아 있다. 각각 1만원. 황태에 얼큰한 양념을 해 쪄낸 ‘북어찜’(1만5000원)도 술안주로 인기다. 삼청동 마을버스 11번 종점, 삼청공용주차장 뒤편 골목에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9시까지. 1년 중 새해 첫날, 설날, 추석 등 총 사흘만 쉰다. (02)736-9716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재료의 맛을 살린 건강한 식단으로 주변에 있는 청와대나 감사원 직원들 중 단골이 적지 않다. 편하게 방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골랐다는 게 류 장관의 설명이다. 한쪽에 된장찌개, 우거지, 김치 등 기본 찬과 북어찜, 녹두전, 도토리묵 무침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시골(경북 상주) 출신인 그가 2008년 상반기 대통령실장 시절부터 자주 왔던 단골집이다. “사치스러운 생각, 고급스러운 것들은 의식적으로 경계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나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초심을 되새기게 됩니다.”
◆“정부 실세? 국가 위한 봉사자일 뿐”
류 장관에게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 ‘왕의 남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리학계의 석학,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실장, 주중국대사 등 이력도 쟁쟁하기에 그의 소탈한 입맛은 더욱 의외로 다가왔다. 류 장관은 업무상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호텔 음식점을 찾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직자가 비싼 음식을 먹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세’에 대한 생각을 묻자 “기자들이 아직 나를 잘 모른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화려한 수식어에 현혹될 나이는 지나갔습니다. 만 30세에 서울대 교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2010년 만 60세에 사표를 냈지요. 태어나서 30년간 공부하고, 이후 30년간 일을 했습니다. 그 이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세라는 말은 가당찮아요.”
류 장관은 최근 우리 사회에 봉사 문화가 빠르게 퍼져가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기업의 사회환원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 기업이 중국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가장 큰 비결은 위험을 무릅쓴 도전,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대사로 있던 시절 조사해봤더니 외부에 알리지 않고 지역 내 학교와 고아원 후원, 장학금 기탁 등의 활동을 하는 우리 기업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달려가니 이미 우리 기업이 복구활동을 위한 비용을 기부하고 간 뒤였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 기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임정순 고향보리밥집 사장이 “조금 전 목포에서 도착했다”며 참기름과 깨소금으로만 양념한 산낙지 접시를 손수 들고 왔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특별히 내놓는 메뉴란다. 얘기하는 데 몰두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류 장관에 대한 임 사장의 ‘애정’이 담겨 있다. 이어 고향보리밥의 대표 메뉴 보리밥이 나왔다. 묵직한 놋그릇에 콩나물 무나물 해초와 함께 파프리카, 적채, 계절채소 등 10여종의 채소가 푸짐하게 담겼다. 여기에 꽁보리밥이 나무바가지에 한가득 담겨 나왔다. 류 장관이 먼저 꽁보리밥과 기장쌀밥을 놋그릇에 덜었다. 여기에 된장과 고추장을 한 숟갈씩 넣어 비비는 게 일반적이지만 류 장관만의 특별 비법이 있다. “멸치젓갈을 반 숟가락만 넣고 같이 비벼보세요. 개운한 맛이 일품입니다.”
◆“남북관계 기복, 그래도 유연성 필요”
‘실세’이다 보니 주중대사, 통일부 장관 등 그가 새 직책을 맡을 때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이 대통령의 특명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중국대사 시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특명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저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며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없었다면 베이징에서 남북이 접촉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베이징에 간 지 석 달이 지나 이제 시내 지리에 좀 익숙했다 싶었는데 천안함 폭침 사건(2010년 3월26일)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대응이 마무리되고 중국 측에서도 ‘류 대사가 역할을 좀 해보라’고 권유하던 차에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 11월23일)이 터지더군요. 북한과 관계개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지난해 9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유연화 정책’을 내걸었다. 하지만 석 달 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북한은 대남관계를 중단했다. 유독 대북정책에 있어 운이 따르지 않는 듯하다고 이야기하자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며 빙긋 웃었다.
북한은 다음달 중순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남북관계 주무장관으로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남북관계가 풀리기 위해서는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내부가 안정돼야 한다. 아직은 북한이 기존의 ‘선군(先軍)’노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를 두고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북한의 비상식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봅니다. 현존하는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통일인데, 그 과정에서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노력해야지요. 함부로 낙관하지도, 쉽게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유연함이 중요합니다.”
그는 주중대사를 역임하면서 지방정부 24곳을 방문했을 정도로 현장 외교를 중시했다. 이렇게 다져진 중국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만찬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나란히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양 부장은 그에게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가장 진지하게 노력한 대사”라며 “영원한 대사”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최근 한·중 간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됐던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해법이 궁금했다. “‘조용한 외교’가 강조되는 것은 탈북자들의 신변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를 통해 보편적인 규범, 인권을 요구하면서 양국 간 물밑 협력으로 외교적으로 푸는 방식도 필요합니다.” 류 장관은 “대북정책, 외교 사안에서는 관계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게 국민들에게 비밀로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한반도 대운하’ 여전히 아쉽다”
류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이데올로그’다. 4대강 개발, 한반도 대운하 등 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의 이론적 토대가 그에게서 나왔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0년대 중반, 당시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던 류 장관에게 이 대통령이 자문을 구해오면서 시작됐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따른 촛불시위로 4개월여 만에 대통령 실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로서는 아픈 기억이다. 촛불정국 당시의 심경을 묻자 “내가 태어난 곳은 학교 관사”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부친이 선생님이어서 상주 중동 초등학교 관사에서 태어나 학교 운동장을 내 마당처럼 여기고 자랐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군복무를 하고 교수로 30년을 살았으니 일생을 학교에서 보낸 사람이죠. 아카데미즘의 본질은 ‘거짓은 기각하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는 거짓으로 곤경에 몰린 것이 개인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다행히 지금은 거짓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민들도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지요.”
4대강 개발, 한반도 대운하 포기에 대해서는 자신감과 함께 아쉬움도 드러냈다. “4대강은 이미 성공적인 사업이라는 게 증명됐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를 이론적으로 끌어온 사람으로서 아직도 ‘광주대구까지 배가 들어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면 문화적, 경제적으로 더욱 융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운하를 파고있어요. 하지만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니 존중해야지요. 훗날 국민정서가 가라앉고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 운하는 다시 논의될 겁니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제기되는 것을 보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정치는 잘 모른다”면서도 “우리 국민의 안목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은 이미 사안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있고 성숙한 의식이 있어요. 진실은 알려지게 돼 있습니다.”
◆“아픔을 넘어, 도전하라 청춘”
이날 식사의 마무리는 숭늉이었다. 보리밥으로 끓인 숭늉의 깊은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류 장관은 최근 전국의 대학을 찾아다니며 청년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지난주에도 전주, 대전, 울산 등을 다녀왔다. “교수하던 버릇이 나와선지 대학생들을 만나 대뜸 야단부터 쳤습니다.(웃음) 분단 상황에 안주하지 말라고요. ‘통일 세대의 주역이 될 너희가 통일에 회의적이고 우물쭈물해서는 안 된다. 청춘이라 아프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아픔을 넘어서서 도전해야 청춘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통일세는 걷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받을 것입니다. 기업의 돈도 받지 않을 겁니다. 정부와 개인의 피땀이 묻어 있는 돈이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 류우익 장관의 단골집 고향보리밥
서울 대표적 '꽁보리밥'집…묵 무침 · 녹두전 별미
서울 시내에서 ‘꽁보리밥’을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골밥상집. 임정순 사장이 1994년 삼청동 본인 집을 개조해 문을 연 뒤 19년째 소박한 밥상을 내오고 있다.
대표 메뉴는 보리밥. 놋그릇에 파프리카, 적양배추, 콩나물, 해초를 푸짐하게 담고 철에 맞는 나물을 곁들여 입맛을 돋운다. 나무바가지에 담겨 나오는 탱글탱글한 꽁보리밥과 노란 기장밥은 색다른 식감을 선사한다. 1인분 7000원.
도토리묵 무침과 녹두전도 별미다. 도토리 가루만으로 쑨 묵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부서지지 않고, 녹두를 직접 갈아 물만 추가해 부친 녹두전은 녹두 고유의 맛이 살아 있다. 각각 1만원. 황태에 얼큰한 양념을 해 쪄낸 ‘북어찜’(1만5000원)도 술안주로 인기다. 삼청동 마을버스 11번 종점, 삼청공용주차장 뒤편 골목에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9시까지. 1년 중 새해 첫날, 설날, 추석 등 총 사흘만 쉰다. (02)736-9716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