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神託의 부활?…빅데이터는 모든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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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델포이 신전 수백년간 '문답', 디지털 정보 시대에 재탄생하나
범죄 예측 등 인간행동 분석
델포이 신전 수백년간 '문답', 디지털 정보 시대에 재탄생하나
범죄 예측 등 인간행동 분석
“너는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극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오이디푸스가 델포이 신전의 신관에게 받은 신탁(神託)이다. 오이디푸스는 이 신탁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살던 코린토스를 떠났지만 예언은 결국 이뤄지게 됐다.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두 눈을 멀게 하는 것으로 비극은 끝을 맺는다.
○에틸렌을 들이마신 델포이 신관들
오이디푸스에게 피할 수 없는 신탁을 내린 델포이 신전은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태양신 아폴론의 성지다. 아폴론은 이곳을 지배하던 거대한 뱀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전으로 만든다. 대대로 여자 신관이 아폴론의 신탁을 전했는데, 이들은 피톤의 이름을 따 피티아라고 불렸다.
신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이곳에서 실제로 신탁이 내려졌다. 월계관을 쓴 피티아가 바위의 갈라진 틈새로 나오는 가스를 들이마시고 무아지경에 빠져 아폴론의 신탁을 읊었다.
훗날 과학자들은 델포이 신전 지하 단층에서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에틸렌 등 여러 기체가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원전 600년께부터 5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등 국가 중대사부터 개인의 시시콜콜한 고민까지 답을 받아갔다고 한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는 델포이 신전의 신관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2054년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3명의 예지자들이 나온다. 치안당국은 이들의 예지 능력을 이용해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차단한다. 범죄를 일으킬 것으로 예견된 사람을 미리 체포하는 식이다. 예비 범죄자를 체포하는 주인공 존 앤더튼(톰 크루즈)이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이 영화의 줄거리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대개 ‘비정상적’인 능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의 역사를 봐도 예지자들은 경외의 대상이거나 경멸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델포이의 신관들은 바위 틈새로 나오는 에틸렌 가스를 마시고 환각에 빠졌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지자들은 뉴로인이란 마약의 후유증으로 이 같은 능력을 얻게 됐다. 미래 예측을 위해선 ‘비정상적’인 상황이 필요하다는 사회 통념이 무의식 중에 포함됐는지도 모르겠다.
○미래 예측의 시대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미래 예측을 ‘정상의 범위’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경찰청은 범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업무에 도입했다. 샌타클래라대의 조지 모셜 교수가 설계한 이 소프트웨어는 지진이 일어나면 항상 여진이 뒤따르는 것처럼 범죄에도 모방 범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지진 예측 방정식 등을 이용해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지역 등 자료를 공식화했다. 첫 번째 범죄가 일어난 현장을 중심으로 반경 200m 범위 내에서 비슷한 범죄가 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공식을 토대로 산타크루즈 경찰청은 범죄 분야와 범죄가 일어날 장소 등을 예측했다. 소프트웨어 도입 결과 범죄 발생률이 27%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가 일어날 장소에 경찰이 미리 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은 사람들이 남기는 막대한 양의 흔적에서 비롯된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EM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생성 및 복제된 디지털 정보의 양은 1.8제타바이트(ZB)에 이른다. 환산하면 1조9791억기가바이트(GB)다.
과거에는 정보 수집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현재는 발달한 기술과 첨단기기 덕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하는 행동은 물론 CCTV 등을 이용해 오프라인에서 하는 행동까지도 분석 대상이다.
분석의 최종 목표는 미래 예측이다. 통계분석 전문 기업 SAS의 스캇 아이작 부사장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능력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기업 영역에선 지금도 이 같은 일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약물이나 신내림 없이 미래를 내다보는 시대가 머지 않은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극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오이디푸스가 델포이 신전의 신관에게 받은 신탁(神託)이다. 오이디푸스는 이 신탁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살던 코린토스를 떠났지만 예언은 결국 이뤄지게 됐다.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두 눈을 멀게 하는 것으로 비극은 끝을 맺는다.
○에틸렌을 들이마신 델포이 신관들
오이디푸스에게 피할 수 없는 신탁을 내린 델포이 신전은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태양신 아폴론의 성지다. 아폴론은 이곳을 지배하던 거대한 뱀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전으로 만든다. 대대로 여자 신관이 아폴론의 신탁을 전했는데, 이들은 피톤의 이름을 따 피티아라고 불렸다.
신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이곳에서 실제로 신탁이 내려졌다. 월계관을 쓴 피티아가 바위의 갈라진 틈새로 나오는 가스를 들이마시고 무아지경에 빠져 아폴론의 신탁을 읊었다.
훗날 과학자들은 델포이 신전 지하 단층에서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에틸렌 등 여러 기체가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원전 600년께부터 5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등 국가 중대사부터 개인의 시시콜콜한 고민까지 답을 받아갔다고 한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는 델포이 신전의 신관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2054년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3명의 예지자들이 나온다. 치안당국은 이들의 예지 능력을 이용해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차단한다. 범죄를 일으킬 것으로 예견된 사람을 미리 체포하는 식이다. 예비 범죄자를 체포하는 주인공 존 앤더튼(톰 크루즈)이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이 영화의 줄거리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대개 ‘비정상적’인 능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의 역사를 봐도 예지자들은 경외의 대상이거나 경멸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델포이의 신관들은 바위 틈새로 나오는 에틸렌 가스를 마시고 환각에 빠졌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지자들은 뉴로인이란 마약의 후유증으로 이 같은 능력을 얻게 됐다. 미래 예측을 위해선 ‘비정상적’인 상황이 필요하다는 사회 통념이 무의식 중에 포함됐는지도 모르겠다.
○미래 예측의 시대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미래 예측을 ‘정상의 범위’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경찰청은 범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업무에 도입했다. 샌타클래라대의 조지 모셜 교수가 설계한 이 소프트웨어는 지진이 일어나면 항상 여진이 뒤따르는 것처럼 범죄에도 모방 범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지진 예측 방정식 등을 이용해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지역 등 자료를 공식화했다. 첫 번째 범죄가 일어난 현장을 중심으로 반경 200m 범위 내에서 비슷한 범죄가 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공식을 토대로 산타크루즈 경찰청은 범죄 분야와 범죄가 일어날 장소 등을 예측했다. 소프트웨어 도입 결과 범죄 발생률이 27%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가 일어날 장소에 경찰이 미리 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은 사람들이 남기는 막대한 양의 흔적에서 비롯된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EM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생성 및 복제된 디지털 정보의 양은 1.8제타바이트(ZB)에 이른다. 환산하면 1조9791억기가바이트(GB)다.
과거에는 정보 수집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현재는 발달한 기술과 첨단기기 덕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하는 행동은 물론 CCTV 등을 이용해 오프라인에서 하는 행동까지도 분석 대상이다.
분석의 최종 목표는 미래 예측이다. 통계분석 전문 기업 SAS의 스캇 아이작 부사장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능력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기업 영역에선 지금도 이 같은 일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약물이나 신내림 없이 미래를 내다보는 시대가 머지 않은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