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넘는 박달재' 반야월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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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넘는 박달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요계 원로 반야월 씨(본명 박창오)가 26일 오후 3시2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진해농산고를 다니다 중퇴한 뒤 태평레코드사에서 주관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다. 1938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활동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 히트곡을 발표했다.
해방 이후에는 가수보다 반야월(半夜月)이란 예명으로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울고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심금을 울리는 수많은 곡을 선보였다.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 종신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 등을 지냈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노랫말로 대중과 함께한 그를 기려 1993년 ‘내 고향 마산항’을 시작으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소양강 처녀’ ‘삼천포아가씨’ ‘산장의 여인’ ‘무너진 사랑탑’ 등 전국에 세워진 노래비가 10여개에 이른다.
고인은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로 KBS특별상, 화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고인은 해방 이전부터 활동해온 가요 1세대로 박시춘, 이난영과 더불어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릴 만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면서 “말년까지 호탕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작사활동을 계속했고, 고인이 생전에 직접 밝힌 바로는 그동안 발표한 노래가 4000~5000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미호(작곡가)·민호(작곡가)씨, 딸 미라(작사가)·희라(작사가)·애라(주부)·보라(주부)씨가 있다. 빈소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02-3010-2000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진해농산고를 다니다 중퇴한 뒤 태평레코드사에서 주관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다. 1938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활동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 히트곡을 발표했다.
해방 이후에는 가수보다 반야월(半夜月)이란 예명으로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울고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심금을 울리는 수많은 곡을 선보였다.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 종신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 등을 지냈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노랫말로 대중과 함께한 그를 기려 1993년 ‘내 고향 마산항’을 시작으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소양강 처녀’ ‘삼천포아가씨’ ‘산장의 여인’ ‘무너진 사랑탑’ 등 전국에 세워진 노래비가 10여개에 이른다.
고인은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로 KBS특별상, 화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고인은 해방 이전부터 활동해온 가요 1세대로 박시춘, 이난영과 더불어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릴 만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면서 “말년까지 호탕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작사활동을 계속했고, 고인이 생전에 직접 밝힌 바로는 그동안 발표한 노래가 4000~5000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미호(작곡가)·민호(작곡가)씨, 딸 미라(작사가)·희라(작사가)·애라(주부)·보라(주부)씨가 있다. 빈소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02-3010-2000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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