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기 ‘프로작 네이션’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킨 미국 변호사 엘리자베스 워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할 정도로 끔찍한 시절을 보냈다. “누구에게나 감정의 기복은 있지만 우울증은 차원이 다릅니다. 오히려 감정이나 느낌, 반응, 흥미가 전혀 없는 상태지요. 이렇게 사느니 그냥 죽고 싶은 겁니다.” 자해와 약물중독, 돌발행동 등 심한 혼란을 겪었으면서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칼럼니스트로, 저술가로 활기차게 살고 있다. 그런 워첼이지만 발병 후 20여년이 지난 요즘도 증세가 심해질 때가 있다면서 “이건 정말 평생에 걸친 전쟁 같다”고 했다.

‘12음기법’으로 음악의 새 영역을 개척한 쇤베르크도 평생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특히 13이란 숫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오페라 ‘모세와 아론’의 스펠링을 ‘Moses und Aaron’이 아닌 ‘Moses und Aron’으로 한 이유도 글자 수 13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언젠가 13일에 죽을 것이란 강박관념 속에 살다가 결국 1961년 7월13일 세상을 떴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쇤베르크 음악을 듣고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삶에 드리운 불안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가운데 130만명이 최근 1년 사이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게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결과다. 한 번이라도 우울증을 겪은 사람은 271만명이나 됐다. 요즘엔 ‘신형 우울증’이란 게 번지는 모양이다. 유독 직장인들 사이에 많아 ‘직장 우울증’으로도 불린다. 일반적인 ‘정형 우울증’과 달리 직장에선 우울했다가 퇴근하면 급작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게 특징이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남자 중엔 마마보이가 많이 걸린단다.

증세는 이렇다. 자다 깨다하면서 총 수면시간이 늘어난다, 실수로 질책을 받으면 급격히 침울해지면서 졸음이 오는 경우도 있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식욕이 일고 과자 초콜릿 등 단 음식이 자꾸 당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예민해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거절 과민증’이 나타난다 ….

마음의 병이란 게 늘 그렇듯 속시원한 치료법은 없다. 다만 우울하지 않은 척 감추지 말고, 전문가 도움을 받으며 정면으로 맞서는 게 중요하다. 집착할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만큼 몸을 많이 움직여 마음을 다스리라는 조언도 있다. 특히 햇볕아래서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자주하면 ‘마음의 면역력’이 높아져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