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존경받는 기업’ 1위로 꼽혀온 유한양행의 지난 16일 주총에서 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우선 예년 같으면 30분이면 끝날 주총이 그 4배인 두 시간이나 걸렸다.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조카가 경영진의 실적 부진을 질타하자, 유한양행의 사장·회장·재단 이사장까지 지낸 80대 고문이 맞받아치는 등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영업이익이 지난해 492억원으로 거의 반토막 났고, 주가는 17만원대에서 11만원대로 추락한 게 주된 이유다. 업계 순위도 2위에서 4위로 내려갔다.

상장사의 주총에서 실적·주가 부진으로 주주와 경영진이 마찰을 빚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제약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유한양행 경영진의 해명처럼 지난해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소유·경영이 분리된 모델 기업이면서, 책임경영 부재라는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여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창업주의 가족은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사실상 주인이 없는 지배구조에서 경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주인-대리인의 함정에 빠진 상황이다.

유한양행은 국내 최초의 종업원지주제 도입(1936년), 제약업계 첫 기업공개(1962년), 국내 첫 스톡옵션 도입(1993년), 제약업계 첫 정년 연장(2010년)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경영 투명성에선 자타가 공인할 만하다. 그러나 성장성이나 업의 본질이라는 면에서 의문도 제기된다. 최근 한경비즈니스가 실시한 제약담당 애널리스트 15명의 설문 결과 유한양행은 윤리경영만 1위였을 뿐, 혁신 글로벌화 마케팅 등 다른 5개 분야에선 단 하나도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오너십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최근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보여줬다. 미국의 엔론 월드컴 등의 회계부정은 기업을 사유물처럼 여긴 전문경영인의 딜레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한 일본 기업들도 신속하고 결단성 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유한양행은 충분히 존경받을 요소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성역이자 우상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