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내의 자격?
며칠 전 오래간만에 헬스클럽에 운동을 하러 갔다. 러닝머신을 하려고 올라갔는데 TV 화면에 드라마 한 편이 나오고 있었다. 무심코 이어폰을 연결해 보니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였다. 러닝머신 위에서 평소 많이 뛰어야 20~30분 정도였지만 드라마 내용에 빠져서 계속 뛰다 보니 한 시간 정도 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 편부터 본 것도 아니고 중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의 내용으로 상황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름답게 표현은 했지만 불륜 스토리였다.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대치동 학원가 근처로 이사를 간 엄마가 아이가 다니는 치과의 의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 의사 선생님은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줬던 헬스클럽 친구이자 아들 수학학원 원장의 남편이었다. 또한 그 의사 선생님은 매우 따뜻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욱하는 성격에 늘 자기 일에 바빠서 집안일은 잘 돌보지 않는 자신의 남편과는 달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설레는 마음이 생기고…, 여기까지는 다른 드라마와 별반 차이가 없다.

요즘 거의 모든 드라마에 불륜코드가 있다 보니 학원장의 남편이든, 치과 의사 선생님이든 그다지 놀라울 건 없다. 근데 재미 있는 건 내 남편과 내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았을 때 상대방의 반응들이다. 극중 아내의 불륜 소식을 들은 남편은 화를 참지 못하고 부딪치는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인다. 또 아내를 감시하기 위해 위치추적용 불법복제 휴대폰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알고 있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반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가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울면서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부탁한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모습이 더 현실적일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상상을 해봤다. 그 흔하디 흔한 면상에 물 뿌리기? 돈봉투 날리며 먹고 떨어지라고 하기? 찾아가서 무릎 꿇고 놔달라며 애원하기? 과연 남편에게 아는 티를 낼까 안 낼까? 몇몇 지인들의 말로는 아무리 상상을 하고 생각을 해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머리채를 잡게 되고 남편 꼬라지도 보기 싫어진다고 한다. 나도 그럴까? 과연 아내의 자격이라는 것은 뭘까? 눈감아 주는 게 자격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편 자격을 스스로 잃었으니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내로서의 자격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렀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남들에겐 다 일어나도 나에게만은 절대로 없을 일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테다.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중요한 건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상대방을 감시하고 의심하기에 앞서 나부터 조심하자, 이것이다.

박경림 < 방송인 twitter.com/Talkin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