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안전지대 만들자] 산불진압 헬기조종사들의 세계…초속 30m 강풍에도 움켜쥔 조종간…'火魔와 한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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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번씩 생사 고비…조종사의 일상이죠
주민들 삶의 터전 사수…와류·돌풍 겁 안납니다
주민들 삶의 터전 사수…와류·돌풍 겁 안납니다
산림항공본부 원주항공관리소 소속 윤진혁 기장(57)은 반사적으로 장비를 챙겨 자신의 S-64E 헬기에 재빨리 몸을 실었다. 채 걷히지 않은 어둠과 몸조차 가누기 힘든 초속 28의 강풍을 뚫고 도착한 현장은 참담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강풍을 등에 업고 산림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화마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났기 때문이다. 출동한 헬기는 산림항공본부 소속 5~6대가 전부였다. 합동작전을 기대했던 육군항공대 소속 헬기와 외국인이 조종하는 진화헬기는 끝내 뜨지 않았다. 헬기제작사가 권고하는 비행자제 기준인 초속 10의 강풍이 몰아치는 상황이라 이들은 출동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화재현장은 총탄만 빗발치지 않을 뿐 여지없는 전쟁터였다. 사방 시커먼 연기와 강풍으로 매순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산불 특수진화대원 8명을 헬기가 접근하기 어려운 암반과 골짜기 등에 내려준 직후였다.
갑자기 고압선이 눈앞을 덮쳤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조종간을 왼쪽으로 밀면서 동시에 좌측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러나 세차게 몰아치는 남서풍이 헬기를 자꾸만 고압선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동력을 높여 정지상태에서 좌선회하면서 가까스로 충돌을 모면했지만 놀란 가슴을 한동안 쓸어내려야 했다.
몇 해 전 죽음 문턱까지 넘나들었던 경험담을 생생하게 들려주던 윤 기장은 “산불이 날 때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건 채 몸을 던져 산불을 막아내고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헬기 조종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복병들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그 당시 한숨을 돌리자마자 또 한번 죽음의 순간과 맞닥뜨렸던 얘기를 풀어놨다. 산불을 한시라도 빨리 끄고 싶은 욕심에 담수지에서 물을 많이 싣고 이륙하는 순간 돌풍이 몰아치면서 헬기가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다. 동력수치가 떨어지고 경고등이 연신 깜빡였다. 본능적으로 발휘한 비상덤프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십년을 감수한 순간이었다. 동해안에는 푄현상(높은 산을 넘어온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부는 현상) 때문에 봄철만 되면 강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너무 강해 25년의 베테랑 조종사도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다.
산불지점에 물을 투하하고 돌아나오는 순간 능선 정상에서 카모프헬기 한 대가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공중충돌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쌍방조우 시 우선회 원칙에 따라 간발의 차이로 또 한번의 위기를 넘겼다.
윤 기장은 “산불을 끌 때마다 수십번씩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는 게 헬기조종사들의 일상”이라고 털어놨다.
같은 시각 헬기에서 투하된 항공본부 소속 진압대원들의 악전고투가 목격됐다. 노두환 대원(38)은 산등성이에 투입돼 불길확산 방지작업 중이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불길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그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재빨리 방염텐트를 뒤집어 썼으나 불길은 5분여 동안 그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짧은 순간 그의 뇌리에는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와 함께 아내와 7살 난 아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당시 동해안 산불은 산림 974㏊를 불태웠다. 191가구(412명)의 이재민을 냈지만 이틀 만에 완전 진화됐다. 산불 피해액은 46억원이었지만 실제 피해는 훨씬 컸다.
윤 기장도 하루 12시간씩 헬기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항공진화에 매달렸다. 현재 원주 산림항공관리소 운항실장으로 근무 중인 그는 “산불발생지역 일대는 송이가 주민들의 주소득원인데 숲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며 “이듬해 덮친 대형 태풍이 불타버린 산에서 대형 산사태를 만들어내는 등 제2, 제3의 피해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윤 기장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대원들이 와류와 돌풍, 수시로 돌변하는 풍향 등 악조건 속에서 목숨을 내걸고 산불진화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불이 언제 날지 몰라 결혼 후 여지껏 가족들과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해 미안합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쯤 산불이 아닌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져보는 게 그의 소박한 소망이다.
원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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