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서민금융' 악순환 고리 끊어야
몇 해 전부터 정부의 모든 정책들이 서민을 위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정치권은 거의 모든 분야의 정책결정에 있어서 서민을 위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민을 위한 서민금융이 강조되면서 정부는 미소금융에다 제도권 금융회사의 ‘햇살론’과 ‘희망홀씨대출’ ‘새희망홀씨대출’ 등 다각적인 대책을 통해 서민생활을 지원 중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적 성격의 지원은 서민금융 수요에 비해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용이 좋은 사람을 오히려 역차별하고 대출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서민금융은 일반적으로 자금 규모가 작고, 담보능력이 떨어지며, 신용이 약한 저소득층 서민의 재산 형성, 주택마련, 그리고 일시적 자금부족 상태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도와주는 금융이다. 다소 추상적인 서민금융의 정의에 대해 통계적 목적을 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신용등급(1~10등급)을 기준으로 저신용층(6~10등급)에 대한 금융 지원을 일컫는 경향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국내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서민금융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도권 금융회사에 의한 서민금융이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이후 서민에 대한 금융지원이 매우 약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은행의 서민에 대한 금융지원이 크게 축소됐다. 외국계화된 은행들은 안전성과 수익성을 겸비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확대시키고,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부유층 시장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서민금융을 소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서민금융회사의 역할 또한 위축되고 있다. 과거에는 은행 대출을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이들 전통적 서민금융회사가 상당 부분 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상호저축은행의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에 치우치다 최근 어려움 속에서 본래의 서민금융 기능 회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정이다. 또한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상호금융 등 신용협동기구도 2007년 이후 서민 가계대출 비중을 줄이기 시작한 은행을 대신해 서민금융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간간이 건전성 문제가 대두되곤 한다.

등록 대부업의 경우 그동안 제도권 금융회사의 서민금융 역할을 대신해 무담보 소비자금융을 위해 노력했으나 자금조달의 어려움, 최고금리 인하 추세, 사회의 부정적 시각 등으로 인해 점점 위축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대표적인 대부업체들의 예상치 못한 영업정지 등으로 인해 대부업계는 커다란 충격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최근 경기침체, 소득 양극화 등으로 인해 서민의 자금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서민금융의 위기는 서민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이는 다시 서민금융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경제 하부구조의 안정화와 서민금융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적 자금공급보다 금융회사에 의한 서민금융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기책임으로 신용을 공급하는 금융시스템 틀에서 악화일로의 서민금융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앞으로 서민금융에 대한 정책의 큰 틀은 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시키고 양질의 금융소비자가 서민금융 이용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민(자영업자 등도 포함)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자금수요를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서민들이 주택구입이나 사업 등을 위해서는 중장기 자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자금부족 상황에 처해 금리 수준보다 융통 자체의 문제에 직면할 경우에는 이를 책임질 단기 자금공급원이 절실하다. 이런 자금의 성격에 따라 금융회사의 서민금융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은행과 저축은행 등은 중소기업이나 가계의 중장기 자금 지원에 역점을 두고, 신용협동기구들은 지역과 직장 등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본연의 틀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등록 대부업체는 건전한 단기 소비자금융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박덕배 <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dbpark@h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