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달라이 라마 "나를 위해 용서하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QR코드 찍으면 지난 인물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 QR코드 찍으면 지난 인물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적이 되어 당신을 해칠지라도, 평온한 마음만 유지한다면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망상이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티베트의 제정(祭政) 지도자 제14대 달라이 라마(법명 덴진 갸초)는 저서 《나를 위해 용서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미움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을 갖지 않는 일이라고 봤다. 용서는 가해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3월17일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인민해방군’ 병사로 위장하고 포텔라 궁을 빠져나와 망명길에 올랐다. 53년 전 오늘, 그의 지난한 ‘국제 떠돌이’ 여정이 시작됐지만 그는 고난 속에서도 영적 지도자로서 망명정부를 이끌며 꿋꿋이 비폭력주의를 지켰다.
이런 ‘선한 모습’이 전 세계인을 감화시켰고, 그는 강한 외교력을 갖게 됐다. 1959·1961·1965년 유엔총회가 티베트 인권 옹호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유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평화와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등을 이유로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티베트의 제정(祭政) 지도자 제14대 달라이 라마(법명 덴진 갸초)는 저서 《나를 위해 용서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미움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을 갖지 않는 일이라고 봤다. 용서는 가해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3월17일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인민해방군’ 병사로 위장하고 포텔라 궁을 빠져나와 망명길에 올랐다. 53년 전 오늘, 그의 지난한 ‘국제 떠돌이’ 여정이 시작됐지만 그는 고난 속에서도 영적 지도자로서 망명정부를 이끌며 꿋꿋이 비폭력주의를 지켰다.
이런 ‘선한 모습’이 전 세계인을 감화시켰고, 그는 강한 외교력을 갖게 됐다. 1959·1961·1965년 유엔총회가 티베트 인권 옹호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유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평화와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등을 이유로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