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수출주의 가격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일간 수출경합도가 높은 업종들의 이익이 실제로 훼손될 수준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19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과 비슷한 83.44엔에 거래되고 있다. 엔화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6주째 달러 대비 약세를 지속하며 83엔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10월 달러당 75엔까지 내려갔던 엔화는 지난달 14일 일본은행(BOJ)이 자산 매입 프로그램 규모를 10조엔 수준으로 확대하자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엔·달러 환율 상승)했다. 지난 15일에는 장중 11개월만에 최고 수준인 달러 당 84.16엔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한·일간 수출경합도가 높은 업종들에 대한 투자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박중섭 대신증권 투자전략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엔화의 절하 현상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선 정도로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한일간 수출경합도가 높은 업종들이 엔화 약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 우려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경합도가 높은 업종은 소재(철강, 화학)과 운수장비(조선, 자동차), 기계 등이 꼽힌다. 철강 및 금속, 에너지화학 업종의 수익률은 지난달 종가 대비 -5~6% 수준(13일 종가 기준)을 기록했다.

다만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실질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증시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전지원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지금의 엔저 현상은 BOJ의 유동성 공급과 미 달러화 강세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그러나 엔저 현상이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을 저하시킬 정도로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 하락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일본 경기침체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 연구원은 "실수급 면에서도 내달까지 해외 투자금의 본국 송금 수요 등이 이어지면서 엔·달러 환율 상승 속도를 둔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업체와의 대표적인 경쟁업종인 자동차 분야의 경우에도 아직 실적 저하를 우려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병관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일본 업체들의 최우선 목표는 이익률 회복인데 엔·달러 환율 80엔대 수준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며 "일본 업체들이 가격경쟁을 벌일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회복되려면 최소 달러당 100엔 수준에는 도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도요타 자동차 등 일본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2~3% 수준에 머무르는 상태에서는 10%안팎의 이익률을 기록 중인 현대차기아차 등과 가격경쟁을 벌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호 솔로몬투자증권 연구원은 엔저 현상의 영향력에 대해 "국내 업체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일본업체들이 엔저로 얻은 이익을)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하면서 국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최근 일본 업체는 차량 판매가 증가하고 재고는 낮은 수준인 가운데 실적이 좋지 못해 비용 증가에 대한 부담이 높은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IT업종의 경우는 엔저 효과를 따지기에 앞서 제품경쟁력에서 이미 격차가 크다는 분석이다.

송종호 KDB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이미 삼성전자하이닉스 같은 국내업체들이 제품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엔저 현상에 따라 받을 영향력은 미비한 수준일 것"이라며 "특히 반도체 같은 경우 엘피다가 파산절차를 밟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와 경쟁에 나설 만한 데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고 언급했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여전히 엔화가 달러 당 90~100엔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바클레이즈캐피탈은 최근 보고서에서 엔화 환율이 앞으로 6개월 안에 90엔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변지영 우리선물 외환연구원은 "엔화 약세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쪽 유동성 공급 정책에 따른 미 달러화 강세 분위기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다만 작년 4월 기록했던 전고점 85엔대 수준까지는 빠르게 도달하더라도 90엔대까지 떨어지기 전까지는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글로벌 경기 변수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