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국고섬 사태의 생채기
중국고섬요? 말도 하지 마십시오.” 한 증권사에서 외국기업 상장을 담당하는 직원은 중국고섬에 대해 묻자 말을 자르고 나섰다. “더 이상 말도 꺼내지 말라”는 투였다. “고섬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 않느냐”고 되묻자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툭 쏘아붙였다.

이유는 이랬다. 그는 중국고섬 사태 전부터 중국 기업을 한국거래소에 상장시키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상장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작년 3월 중국고섬의 매매거래가 정지되는 이른바 ‘고섬사태’가 터졌다. 한국 투자자들의 시선은 싸늘해졌고, 그 기업의 상장 시기도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작년 하반기. 다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이번엔 각종 규정이 가로막았다. 중국고섬에 놀란 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은 심사를 강화했다. 해당 기업은 “더 이상 못하겠다”며 상장을 포기했다. 그로서는 1년 동안 공들인 기업을 놓친 셈이 됐다.

불투명한 회계처리 문제로 매매거래 정지된 중국고섬이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중국고섬 사태 이후 한국거래소에 상장한 외국 기업은 중국 완리 1개뿐이다. 상장을 추진하던 기업들은 다른 나라 거래소로 발길을 돌렸다.

고섬사태 이후 외국 기업의 허술한 상장심사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자 거래소와 금감원은 증권신고서의 정정요구를 하는 등 깐깐한 잣대를 들이댔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외국 기업은 상장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거래소는 “제2의 중국고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거래소의 설명이 백번 맞다. 문제는 거래소의 상반된 태도다. 거래소는 요즘 터키와 카자흐스탄, 브라질 기업의 국내 상장을 유치하기 위해 분주하다. 김봉수 이사장이 출장을 다녀올 정도다. 목표로 내건 글로벌 100대 기업 상장 유치를 위해서다.

한쪽에서는 외국기업 상장에 대한 높은 칸막이를 쳐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한 관계자는 “거래소가 유치하려는 카자흐스탄 자원 개발 업체와 공모를 포기한 중국 기업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석연치 않아 씁쓸하다.

하수정 증권부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