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어도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1974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離於島)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이다. 이여도 또는 파랑도로도 불린다. 예부터 남편이나 아들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어도에 산다고 믿었다. 고은의 시 ‘이어도’에서도 “아무도 이어도에 간 일이 없다/그러나 누구인가 갔다 한다/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고 썼다.

해녀들이 바다에 나갈 때 부른 ‘이어도 타령’이 구전돼 내려온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라는 도입부는 노 저을 때의 여음인데 ‘이어도로 가자’ 또는 ‘이어도에 사느냐’는 뜻이라고 한다. 이어도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상징하기에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의 소재가 됐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이어도’(1977년)가 유명하고, 최근 가수 이상은이 같은 타이틀의 노래도 발표했다.

전설 속 이어도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제주 남쪽 바다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하면서다. 영국 해군은 1910년 수심 5.4m 아래 암초를 측량했다. 이어도의 국제 명칭이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가 된 이유다.

이어도의 위치는 제주 마라도 서남쪽 149km 떨어진 곳이다. 이름은 섬이지만 실제론 4개 봉우리로 구성된 거대 수중 암초다. 1984년 제주대 탐사팀이 정상부가 해수면 4.6m 밑에 있음을 확인했다. 평상시엔 보이지 않다가 파고가 10m 이상 돼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옛날 누군가 이어도를 봤다면 격랑 속에 무사히 귀환하기 어려웠기에 그런 전설이 생겼을 것이다.

정부는 1995년부터 해저지형 등 준비에 들어가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 일본 측과 이어도를 둘러싼 마찰이 표면화 됐다. 이어도는 중국 동쪽해안 퉁다오(童島)에서 247km, 일본 남쪽 도리시마(鳥島)에선 276km 떨어져 마라도보다 100km 안팎 멀다. 그럼에도 중·일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이어도 인근 수역이 황금어장이고 연간 25만척이 지나는 항로의 요충인 데다, 72억t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시끄러운 판에 중국이 이어도를 정기 순찰대상에 포함시켜 다시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이 이어도에 훨씬 가깝지만 해군기지(부산과 상하이)에서 거리는 되레 150km나 더 멀다. 이어도를 영영 돌아오지 못할 섬으로 만들까 걱정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