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제약업체 연 손실 1조7000억…약값 일괄인하는 정부의 '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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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의료비 지출 397弗…OECD 평균 503弗보다 낮아
FTA 앞두고 엎친데 덮쳐…인하조치 일정기간 유예를
1인당 의료비 지출 397弗…OECD 평균 503弗보다 낮아
FTA 앞두고 엎친데 덮쳐…인하조치 일정기간 유예를
최근 정부가 6506개 의약품에 대해 일괄적인 약가 인하 조치를 단행했다. 오는 4월1일부터 적용되는데, 제약사마다 수십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 이상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 국내 제약산업 1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제약업계에선 당장 연간 1조700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현재 우리나라 약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종전까지 의료계 리베이트가 20% 정도였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인하해 약값의 거품을 빼야 한다는 게 정부 측 주장이다.
그럼 우리나라 약값은 과연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인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값은 환율 기준으로 주요 16개국에서 하위권에, 구매력지수(PPP)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권에 속한다. 정부는 구매력지수를 적용해 우리나라 약값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약가정책이 ‘환율’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값은 환율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보건계정에서 약제비는 어느 계정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약값 수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약제비는 국민의료비 대비 2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2%)보다 높지만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하면 1.5%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이며 1인당 지출은 397달러 정도다.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만 놓고 보면 OECD 평균인 503달러보다 낮다. 국민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이 21.1%로 OECD 평균인 16.2%보다 높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국내 약값이 높다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약제비의 비중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료비가 얼마인데 그 중에 약제비로 얼마를 쓰느냐’ 하는 것이다. 통상 국민의료비는 의료수가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높고, 약제비는 선진국이나 저개발국 간 격차가 크지 않다. 결국 약제비 비중은 선진국일수록 낮고 저개발국일수록 높게 나타난다.
앞서 정부는 2006년 5월6일 약값을 인하하기 위해 보험의약품의 가격제도를 포괄등재제도(신규 의약품을 보험의약품으로 신청하면 모두 받아주는 제도)에서 선별등재제도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2007년부터 보험에 등재되는 신약 가격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 9개국 평균가격의 40~60%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정부는 또 2011년 8월12일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보험등재제도를 계단식에서 일괄인하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특허가 만료되는 신약과 제네릭 의약품은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모두 53.55%로 낮아진다. 이 같은 일련의 약가정책 변화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약값은 더 이상 높다고만 주장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부의 전면적인 일괄 약가인하 조치로 제약업계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총액만 놓고 보면 일시에 의약품 가격을 1조7000억원이나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등재 의약품의 목록정비 사업에서는 7800억원을 내린 바 있다. 7800억원도 제약업계의 수용력을 감안, 향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반면 이번 4월에 단행되는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일괄 약가인하는 제약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는 약가 인하의 명분으로 리베이트 근절을 내세우고 있다.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만큼 약값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20%는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파악한 리베이트 규모다. 리베이트로 적발된 품목 대부분은 경쟁이 치열한 제품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전 품목에 적용해 리베이트가 매출의 20%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학회나 학술활동 지원, 영업사원 판촉활동 등 공정경쟁 규약에 의거한 합법적인 마케팅 행위까지 불법 리베이트로 적용하는 실정이다. 이를 과다하게 부풀려 약가 인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더불어 4월1일 일시에 단행되는 약가 인하는 제약업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제약산업을 둘러싼 관련업체는 물론 학계, 연구계 등에 걸쳐 건전한 생태계의 위축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FTA 발효 이후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국내 제약업계는 연간 수천억원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FTA 최대 피해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산업정책적 지원과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인데도 대대적인 약가 인하로 ‘이중고’를 겪게 된 것이다.
제약업계는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을 위해 약값 인하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7800억원의 약값을 인하하는 정부 방침을 수용했고, 이번 1조7000억원의 약가 인하도 일괄이 아닌 유예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대안을 수차례 관계당국에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의 일방주의적 정책 집행은 여지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현실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이 다국적 외자 제약사들에 비해 연구·개발(R&D) 능력이 아직 한참 떨어진다고 볼 때, 통상 신약 하나 만드는 데 15년 걸리는 업계 특성을 감안한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약가 인하의 유예기간을 두고 R&D 등에 지원할 수 있는 제약사별 여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단계적인 약가 인하가 제약산업과 건보재정 안정을 가져오는 ‘솔로몬의 지혜’라고 판단된다.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값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해 국민건강과 보험재정에 기여해왔다. 선진 의약품제조관리기준(cGMP)에 부합하도록 꾸준히 투자해왔고 그 결과 의약품의 품질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100년 제약사에서 그동안 모두 18개의 신약을 개발했다. 현재 세계 열 번째 신약개발 국가로 평가받는다. 미국 영국 일본 스위스 등 세계적인 의약 선진국을 맹렬하게 뒤쫓고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 당시 국내 제약사가 생산한 백신이 위기 극복에 기여한 사례만 보더라도 토종 제약사의 육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케 한다. 토종 제약산업이 쇠퇴하면 국가적인 손실이다. 국내 제약산업이 몰락하게 되면 오히려 고가 의약품의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머지 않아 보험재정의 안정적 관리도 어려워진다. 국내 제약산업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건강보험재정의 건전화에 필수불가결한 국가기간산업이다. 제약업계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유연하고 경쟁력 있는 약가정책이 펼쳐져야 할 시기다.
전인구 동덕여대 교수
△서울대 약학과 △대한약학회 회장 △한국약학교육평가원 이사장
제약업계에선 당장 연간 1조700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현재 우리나라 약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종전까지 의료계 리베이트가 20% 정도였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인하해 약값의 거품을 빼야 한다는 게 정부 측 주장이다.
그럼 우리나라 약값은 과연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인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값은 환율 기준으로 주요 16개국에서 하위권에, 구매력지수(PPP)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권에 속한다. 정부는 구매력지수를 적용해 우리나라 약값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약가정책이 ‘환율’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값은 환율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보건계정에서 약제비는 어느 계정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약값 수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약제비는 국민의료비 대비 2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2%)보다 높지만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하면 1.5%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이며 1인당 지출은 397달러 정도다.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만 놓고 보면 OECD 평균인 503달러보다 낮다. 국민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이 21.1%로 OECD 평균인 16.2%보다 높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국내 약값이 높다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약제비의 비중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료비가 얼마인데 그 중에 약제비로 얼마를 쓰느냐’ 하는 것이다. 통상 국민의료비는 의료수가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높고, 약제비는 선진국이나 저개발국 간 격차가 크지 않다. 결국 약제비 비중은 선진국일수록 낮고 저개발국일수록 높게 나타난다.
앞서 정부는 2006년 5월6일 약값을 인하하기 위해 보험의약품의 가격제도를 포괄등재제도(신규 의약품을 보험의약품으로 신청하면 모두 받아주는 제도)에서 선별등재제도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2007년부터 보험에 등재되는 신약 가격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 9개국 평균가격의 40~60%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정부는 또 2011년 8월12일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보험등재제도를 계단식에서 일괄인하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특허가 만료되는 신약과 제네릭 의약품은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모두 53.55%로 낮아진다. 이 같은 일련의 약가정책 변화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약값은 더 이상 높다고만 주장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부의 전면적인 일괄 약가인하 조치로 제약업계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총액만 놓고 보면 일시에 의약품 가격을 1조7000억원이나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등재 의약품의 목록정비 사업에서는 7800억원을 내린 바 있다. 7800억원도 제약업계의 수용력을 감안, 향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반면 이번 4월에 단행되는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일괄 약가인하는 제약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는 약가 인하의 명분으로 리베이트 근절을 내세우고 있다.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만큼 약값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20%는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파악한 리베이트 규모다. 리베이트로 적발된 품목 대부분은 경쟁이 치열한 제품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전 품목에 적용해 리베이트가 매출의 20%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학회나 학술활동 지원, 영업사원 판촉활동 등 공정경쟁 규약에 의거한 합법적인 마케팅 행위까지 불법 리베이트로 적용하는 실정이다. 이를 과다하게 부풀려 약가 인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더불어 4월1일 일시에 단행되는 약가 인하는 제약업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제약산업을 둘러싼 관련업체는 물론 학계, 연구계 등에 걸쳐 건전한 생태계의 위축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FTA 발효 이후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국내 제약업계는 연간 수천억원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FTA 최대 피해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산업정책적 지원과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인데도 대대적인 약가 인하로 ‘이중고’를 겪게 된 것이다.
제약업계는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을 위해 약값 인하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7800억원의 약값을 인하하는 정부 방침을 수용했고, 이번 1조7000억원의 약가 인하도 일괄이 아닌 유예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대안을 수차례 관계당국에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의 일방주의적 정책 집행은 여지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현실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이 다국적 외자 제약사들에 비해 연구·개발(R&D) 능력이 아직 한참 떨어진다고 볼 때, 통상 신약 하나 만드는 데 15년 걸리는 업계 특성을 감안한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약가 인하의 유예기간을 두고 R&D 등에 지원할 수 있는 제약사별 여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단계적인 약가 인하가 제약산업과 건보재정 안정을 가져오는 ‘솔로몬의 지혜’라고 판단된다.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값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해 국민건강과 보험재정에 기여해왔다. 선진 의약품제조관리기준(cGMP)에 부합하도록 꾸준히 투자해왔고 그 결과 의약품의 품질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100년 제약사에서 그동안 모두 18개의 신약을 개발했다. 현재 세계 열 번째 신약개발 국가로 평가받는다. 미국 영국 일본 스위스 등 세계적인 의약 선진국을 맹렬하게 뒤쫓고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 당시 국내 제약사가 생산한 백신이 위기 극복에 기여한 사례만 보더라도 토종 제약사의 육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케 한다. 토종 제약산업이 쇠퇴하면 국가적인 손실이다. 국내 제약산업이 몰락하게 되면 오히려 고가 의약품의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머지 않아 보험재정의 안정적 관리도 어려워진다. 국내 제약산업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건강보험재정의 건전화에 필수불가결한 국가기간산업이다. 제약업계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유연하고 경쟁력 있는 약가정책이 펼쳐져야 할 시기다.
전인구 동덕여대 교수
△서울대 약학과 △대한약학회 회장 △한국약학교육평가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