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으로 풀어낸 한국인 신명
“1990년 초부터 10여 차례 중국 창바이현에서 단둥을 거쳐 만주와 압록강변을 따라 고구려와 발해문화를 탐방한 적이 있어요. 우리의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를 고구려 벽화를 통해 느꼈죠. 그때 민족의 얼을 표현하기 위해 ‘축제’라는 화두를 잡아냈습니다.”

8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원로화가 이태길 씨(71)는 “전통 문화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사실주의 화풍을 버리고 흥겨운 춤사위를 통해 우리 겨레의 신명을 표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미술협회와 목우회 고문을 맡고 있는 이씨는 풍속화나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생도를 비롯해 주술적인 부적 이미지, 신명나는 춤사위 등을 현대적 미감으로 표현해왔다. 풍악놀이 마당놀이 강강술래 살풀이 등을 작품 소재로 사용하며 한국인의 슬픔과 비애를 ‘신바람’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10년 만에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 이후 ‘축제’ 시리즈를 포함한 근작 100여점을 내보인다.

‘축제’ 시리즈는 기존의 도상들을 한데 엮어 ‘조곡(組曲·일종의 무곡)’의 운율을 녹여낸 것. 농악과 강강술래의 원무를 군무 형태로 전환시켜 서양 춤곡의 리듬감을 담아냈다.

“우리 민족의 예술혼을 세계적인 축제마당으로 재현해봤습니다. 흥겨운 군무를 통해 현대인의 신명을 표현하려 한 것이죠. 작품 배경에는 전통 도자기에 등장하는 학문, 운문, 모란문의 상서로운 이미지를 곁들였고 채색은 오방색을 사용했습니다.”

한국의 빛깔과 축제를 통해 현대적인 미의식으로 승화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는 “근작들을 통해 제 예술을 세계인의 풍류로 넓혀가고 있다”며 “우리 모두가 하나의 가족임을 보여주면서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02)720-5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