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자연을 모르고 자연 그리기
에도시대(1603~1867) 일본 화가들 중에는 서양화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제대로 이해한 화가는 드물었다.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인으로부터 배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론서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가사키를 통해 유입된 서양서적 속의 삽화를 보며 주먹구구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물은 또 있었다. 서양인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통합체로 바라본 데 반해 일본인들은 자연을 단편적으로 이해했다. 전체보다는 부분에 집착했다. ‘자연’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양화처럼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통합된 공간을 그린다는 것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림이 있는 아침] 자연을 모르고 자연 그리기
일본 서양화의 원조 중 한 사람인 오다노 나오다케(小田野直武·1749~1780)의 ‘불인지(不忍池·도쿄 우에노의 연못)’는 그런 겹겹의 난관 속에서 탄생한 문화적 기형아다.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화가는 앞의 화분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고 뒤의 경치는 아주 작게 그려 원근감을 자아내려 했다. 결과는 서로 다른 공간의 어색한 모자이크일 뿐이다. 서구문화 수입을 둘러싼 근대 일본의 고민은 이렇게 현실공간에 앞서 그림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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