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단식
물만 마시며 단식할 때 버틸 수 있는 한계는 35~45일이라고 한다. 물도 마시지 않을 경우엔 10일을 넘기기 어렵다. 내분비 계통에 이상이 생기는 데다 전해질 불균형, 영양결핍 등이 나타나는 탓이다. 비타민 부족도 치명적일 수 있다. 단식하면 ‘몸의 독소가 빠져 나가 체질이 달라진다’거나 ‘숙변을 제거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장기적 효과에 대해선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신을 관철하거나 항거 수단으로 단식이 동원되곤 한다. 중국 무왕이 상(商)을 멸하고 주(周)를 세우자 주나라 음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백이·숙제 고사’가 있는 걸 보면 단식은 이미 기원전 1000년 무렵에도 저항의 수단으로 쓰였던 것 같다. 1981년 아일랜드공화군(IRA) 일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보비 샌즈는 감옥에서 영국 정부에 항의해 66일간 단식한 끝에 숨을 거뒀다. IRA 대원 9명이 샌즈의 뒤를 따르자 국제사회에 큰 반향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선 1983년 YS가 전두환 정권의 정치규제와 가택연금에 항의, 23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외신에는 크게 보도됐지만 국내에선 언론통제 탓에 ‘어느 재야 인사의 식사 문제’로만 알려졌다. DJ는 1990년 평민당총재 시절 지방자치제 실시와 내각제 포기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했다. 2003년엔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 거부에 항의하는 단식에 들어갔다. 위로차 방문했던 YS는 이런 말을 남겼다. “굶으면 죽는 것이 확실하다.”

박선영 의원이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벌이던 중 실신하자 일부 좌파 네티즌들이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쇼까지 했는데도 공천탈락 소식에 졸도…’ ‘코는 어느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수술비 몇천만원 했을 것 같은데 그걸로 탈북자들 도와주세요’ 등 인신공격성 댓글이 달렸다. 정봉주 팬클럽 사이트에서도 ‘안면 근육 배열을 보니 기절한 게 아니다’ ‘오버 적당히 해라’ 등의 조롱이 쏟아졌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은 이념이나 정치 이전에 가장 근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다. 이번 단식으로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도 탈북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탤런트 차인표 씨를 비롯 가수 윤복희 아이비 김범수 구준엽 최정원 씨 등 연예인 30여명도 동참하고 있다. 인권탄압이란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던 좌파들만 침묵하면서 스스로 ‘가짜 진보’임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