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효과·3D 비켜…무성영화 "나 아직 안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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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1920년대까지 장면 맞춰 음악 연주
OST 인기…스토리 전개 필수 요소로
무성영화 '아티스트' 오스카상 5관왕
1920년대까지 장면 맞춰 음악 연주
OST 인기…스토리 전개 필수 요소로
무성영화 '아티스트' 오스카상 5관왕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 감독이 만들어 1914년 처음 상영한 이 영화는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친우(親友) 관계였던 스톤맨 가문과 카메론 가문의 사람들이 전쟁을 계기로 겪게 되는 갈등을 소재로 당시의 정치적 대립과 국가에 대한 의식 변화 등을 그리고 있다.
110년이 넘는 영화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손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흑백이라 잘 집중도 되지 않는데 소리까지 없는 영화를 2시간30분 넘게 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자다 깨다 하며 건성으로 영화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장면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연주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에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스크린 한쪽에 서서 장면에 맞춰 대사를 대신 읊어주는 ‘변사’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현장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목소리를 대신했다. 원래는 영사기가 작동하며 내는 소음이나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초창기에는 피아니스트가 영화 분위기에 맞춰 임의로 곡을 골라 연주했지만 점차 영화 장면에 알맞은 음악을 정해 연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영화음악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바로 ‘국가의 탄생’이었다. 영화를 위해 음악을 기획한 최초의 사례다. 촬영장에서도 배우들에게 장면의 분위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음악을 들려줬다고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무대 앞쪽에 오케스트라가 자리잡고 앉아 실제로 음악을 연주했다. 주로 바그너 등 19세기 낭만주의 음악들이 연주됐다고 하는데 당시 관객들에게는 영상과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이었을 것이다. 기자가 이 영화를 볼 때도 오케스트라가 있었다면 조금은 덜 졸렸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필름에 소리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는 기술이 생겨나면서 영화음악은 빠르게 발전했다. 1930년대 들어 워너브러더스, 20세기폭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등 할리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거대 영화 스튜디오들이 나타나면서 영화음악에 대한 수요 역시 급격하게 늘어났다.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만드는 음악 감독이란 직책이 생겨나고 유명 오케스트라가 영화음악을 녹음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영화 주제가와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50년 전후의 일이다. 현재의 영화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을 넘어 영화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관람객의 몰입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아날로그의 부활
지난달 열린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를 불러모은 작품은 미셸 아자나비슈스 감독의 ‘아티스트’였다.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에서 3관왕을 차지하더니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5관왕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흑백이면서 무성영화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옛날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한다. 중간중간 필요한 장면에만 자막을 삽입했다. 대사와 효과음이 사라진 공간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가득 채웠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내용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가 혼재하던 시기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유성영화의 등장과 함께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과거의 스타 조지와 유성영화 시대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떠오른 페피 사이에서 벌어지는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유성영화에는 진지함이 없다”며 “난 꼭두각시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자존심을 세웠던 조지가 페피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한다는 다소 뻔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화려한 특수 음향과 영상에 익숙해진 지금 표정과 연기, 음악만으로 승부하는 이 영화가 되레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