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콧대높던 창이공항도 이젠 벤치마킹 하러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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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전통문화 전시관 개설·공연, 他공항과 차별…외국인 '원더풀'
7년 연속 세계 최고공항 '우뚝'
2008년 취임 후 인사제도 혁신‥청탁배제…'공모제' 로 공정·투명
전통문화 전시관 개설·공연, 他공항과 차별…외국인 '원더풀'
7년 연속 세계 최고공항 '우뚝'
2008년 취임 후 인사제도 혁신‥청탁배제…'공모제' 로 공정·투명
2008년 9월 부임한 이채욱 인천공항공사 사장(67)은 올해 개항 11년째인 인천국제공항을 국제공항평가기관 평가에서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에 올려 놓았다. 7년째 ‘세계 1등 공항상’을 받으면서 공항 경영에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올랐다.
‘CEO는 임시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CEO가 자주 바뀌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23년째 장수한 비결이 뭘까. 그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을 우량 기업 또는 일류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단순히 운(運)만은 아닐 것이다.
2일 오전 11시, 서울 화곡동 강서구청 앞에 있는 60년 전통의 해산물 식당 ‘충무호동복집’에서 이 사장과 자리를 같이했다. 그는 앉자마자 “일요일 가족들과 교회에 갔다가 자주 들르는 집”이라며 이 식당의 역사와 음식을 칭찬했다. 세 딸을 둔 이 사장은 일요일이면 아내와 결혼한 두 딸, 사위와 함께 점심식사를 같이한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고 크지도 않은 식당이지만 신선한 복어로 만든 맛깔스럽고 시원한 복국과 싱싱한 자연산 잡어회가 일품이지요. 경남 통영에서 매일 오전 9시에 비행기에 띄워 보내기 때문에 바다에서 막 올라온 신선한 횟감과 각종 해산물을 곧바로 맛볼 수 있죠.”
은근한 그의 칭찬을 들으니 군침이 돌고 시장해졌다. 자연산 회를 빨리 맛보기 위해 식당 주인에게 음식을 재촉했지만 12시가 돼야 음식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항공편으로 올라오는 횟감이 오전 11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빨리 요리하더라도 12시가 돼야 음식이 나온다는 것.
▶맛집을 자주 찾나 봅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닌데 이곳만은 자주 옵니다. 제가 참석하는 ‘이오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이 모임도 이곳을 자주 찾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임을 갖는데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정훈 대표,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김승규 전 법무부 장관,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 등이 회원이죠.”
모임 이름이 왜 이오회일까. 이 사장은 “모임 때 1인당 비용이 2만5000원을 넘지 않는 식당에서만 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주메뉴인 복국과 멍게비빔밥 세트는 1만7000원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2만원도 안 내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서울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경북 상주에서 가난한 집안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죠. 방학 때마다 힘들게 거름을 나르는 지게를 지면서 먹었던 밥맛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면사무소 서기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담임 선생님이 영남대 장학생에 도전하라고 권유해 영남대 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한참 기다린 끝에 밑반찬이 나왔다. 멍게 해삼 복껍질 생미역 파래무침 등 해산물 일색이었다. 남쪽 바다의 향기가 전해졌다.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음식을 맛봤다. 이 사장이 자랑할 만했다. “하하… 앞으로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올 테니 기대하세요.” 그렇다고 음식만 기다릴 순 없었다. ‘본론’ 격인 공항 경영 얘기로 들어갔다.
▶인천공항이 7년 연속 세계 1위 공항에 올랐습니다.
“두 번, 세 번 1등할 수는 있겠지만 7연패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는 5월22일 인천공항이 과거 세계 최고 공항이던 창이공항이 있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세계 최고 공항상을 받게 돼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7년 전만 해도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1등을 도맡아 한 창이공항은 그 후 인천공항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항상 아쉬운 2등에 그쳐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입니다. 그간 최고 공항이 되기 위해 공항 종사자 모두가 합심해 ‘좀 더 빠르고, 안전하고, 편리하며, 청결하고 친절한 공항’ 만들기에 주력한 결과지요. 특히 세계 다른 공항에 없는 전통문화의 향기와 혼을 불어 넣었죠. 여객터미널 한복판에 전통문화 상시 공연장을 만들어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하고 있고, 전통 공예품을 무료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전통문화 체험관까지 마련해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일류공항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라고 봅니다.”
▶인천국제공항 사장으로서 잊지 못할 사연도 적지 않았을 텐데요.
이 사장은 2008년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의 일화를 털어놨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GE헬스케어 아시아 총괄 사장으로 재직하다 인천공항 대표로 내정되자마자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으로 평가받던 싱가포르 창이공항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만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 후 3년이 지났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최근 싱가포르 교통부 장관 및 공항 관계자 13명이 인천공항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1등 공항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더군요. 지난달 말까지 세계 각국에서 5959명의 공항 및 항공 관계자와 정부 인사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인천공항을 찾았습니다.”
▶최근 공기업으로는 처음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하는 ‘존경받는 기업 톱10’에 뽑혔습니다.
“공기업이 순위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공기업은 세금 잡아 먹는 곳, 철밥통 등 온갖 좋지 않은 말이 나돌지요. 하지만 공기업도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인천공항이 받은 상 중 이 상이 제일 의미있다고 봅니다. 기업은 윤리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들을수록 CEO로서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 경영 비결을 물어보려는 순간 음식이 들어왔다. “일단 이것 먹고 합시다. 이 집의 자랑거리인 잡어회입니다. 빨리 한 점 들어 보세요.”
자연산 광어, 숭어, 뽈락이 담긴 그릇만 봐도 군침이 넘어갔다. 싱싱한 회맛에 한 잔 걸치니 대화가 막힘없이 이어졌다.
▶인천공항을 세계 최고 공항으로 만든 비결이 궁금합니다.
“공기업은 물론 공적 기능이 중요하지만 민간 기업처럼 성장도 해야 하고 성과도 창출해야 합니다. 성장을 해야 공적 기능도 활성화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공기업의 성장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시각이 있더군요. 적자를 내는 공기업 CEO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인재를 모으고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윤리에 관한 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입니다. 일에서 실패할 수는 있지만 윤리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이 사장은 2008년 취임 직후 인사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외부의 인사 청탁이나 압력을 배제하기 위해 ‘부서 공모제’(job posting)를 도입했다. 사장은 임원급인 본부장만 임명하고 본부장은 처장을, 처장은 팀장을, 팀장은 팀원을 선택하는 드래프트제도다. 그는 “팀워크를 강화하고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는 데 부서 공모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A20면에 계속
"일은 실패할 수 있어도 윤리엔 '두번 다시'가 없어요"
▶새 인사제도 정착에 혼란은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하 다면평가를 통해 움직이는 조직을 만든 것이지요. 예전엔 여기저기서 인사 청탁이 많이 들어왔습니다만 이젠 없습니다. 사장인 나조차 일반 직원에 대해서는 인사권이 없습니다. 팀장에게 권한이 있죠. 인사에 대한 불만도 사라졌고요.”
▶실패를 경험한 적은 언제였나요.
“삼성물산 수입과장을 할 때 고선박 해체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철을 얻기 위해 고선박을 수입하려고 제가 의욕적으로 나섰죠. 고선박을 해체해 고철을 얻으면 고철만 수입하는 것에 비해 이윤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고선박이 부산에 입항하다 그만 침몰해 버렸어요. 당시 삼성물산 자본금의 4분의 1을 허공에 날렸죠. 손실을 무릅쓰고 1년3개월 동안 바닷속에서 고선박을 해체했으니까요. 사업이 끝난 후 사표까지 제출하려 했지요.”
이제서야 얘기가 제대로 되나 싶었는데 또다시 음식이 들어왔다. 아귀 간, 내장, 껍질을 삶은 아귀수육이었다.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수육이 입안에 녹아들었다.
▶그래서 사표를 제출했습니까.
“사표를 쓰긴 했지만 제출은 못하겠더라고요. 애사심이 높을 때였으니까요. 고선박 해체 사업을 마치고 두바이에서 주재원을 했습니다. 당시 4년 동안 두바이에 있으면서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손실을 입힌 것을 만회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그런 성과로 삼성물산 해외 지사장과 해외사업본부장 등을 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사장은 1989년 삼성·GE 의료기기 합작회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제가 간 배경은 사실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회사는 사업 출범 후 자본금의 3분의 2를 날렸으니까요.” 하지만 이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의료기기 사업이라는 아이템을 차마 버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본사에 보고했더니 저더러 해보라고 하더군요. 직접 경영한 결과 연 매출이 45%씩 성장했습니다.” 8년간 삼성·GE 합작회사를 운영하던 이 사장은 1998년 GE로 완전히 적을 옮겼다. GE 잭 웰치 회장까지 이 사장을 GE로 영입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마지막 음식인 복국과 멍게비빔밥이 나왔다. 이 사장은 “멍게에 밥을 비벼 먹으면 참 맛있다”며 시범을 보여줬다. 이 사장의 말대로 멍게의 쌉쌀한 맛과 고소함은 일품이었다.
▶은퇴 후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되는데 왜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합니까. 은퇴를 하게 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은 안 하고 싶어요. 대신 제 경험을 살려 후학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재능 기부라고 할까요. 돈이 목적이 아니라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채욱 사장의 단골집 충무호동복집
통영서 수산물 매일 공수…복국·멍게비빔밥 인기
60년 전통의 충무호동복집(서울시 화곡6동 997-11)은 통영에서 매일 공수해온 자연산 횟감 등 싱싱한 해산물로 유명하다.
주메뉴인 복국(1만2000원)은 신선한 졸복과 미나리, 콩나물을 넣어 시원하고 담백하게 조리해서 뚝배기에 담아 내온다. 점심 때 단연 인기다. 복국과 함께 먹는 멍게비빔밥 세트 메뉴(1만7000원)도 별미다. 1년간 숙성시킨 멍게와 김, 들기름을 함께 비벼 먹으면 멍게 특유의 향으로 남해바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싱싱한 자연산 광어와 숭어, 뽈락, 방어, 가오리 등을 뚜박하게 썰어 내는 산지 직송 잡어회(대 10만원, 중 7만원, 소 5만원)에 겨울철 별미로 아귀의 간, 내장, 껍질 등을 꼬들하고 담백하게 삶은 아귀수육(7만원, 10만원)도 입맛을 돋운다. 식탁을 가득 메운 해산물 밑반찬들에서도 바다의 정취가 묻어난다. 멍게 해삼 복껍질 오징어회 생미역 파래 멸치반찬이 대체로 신선하다. 식당 주인 추선희 씨(63)는 통영시 서호동에서 60년째 복요리 전문식당인 호동식당을 운영하는 모친 전옥선 씨의 맏딸로 18년 전 이곳에 서울 분점을 냈다. 고추장, 된장, 젓갈도 직접 담근 것들이다. (02)2691-6300, 6301
김인완/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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