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웅녀의 자손
혹독한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뱃살을 빼는 건 좋은데 볼살이 빠지면서 나이 들어 보일 뿐 아니라 심지어 어디 아픈 데 없느냐는 얘기를 듣는다면 힘이 쫙 빠질 것이다. 이때 주름지고 볼살이 꺼진 얼굴 윤곽을 효과적으로 커버해주는 게 필러주사다. 최근엔 꺼진 볼살을 볼륨업하는 외에도 코를 높이거나 입술을 도톰하게 하려는 용도로 성형수술보다도 많이 활용돼 ‘프티 성형’이라 불린다.

한데 서양의사들은 필러시술과 관련한 강의를 할 때마다 아름다운 얼굴의 기본 포인트는 ‘뷰티 오브 트라이앵글’이라고 내세운다. 양쪽 눈을 연결하는 선과 앞턱의 중심점을 연결하는 역삼각형이 아래로 뾰쪽한 ‘브이라인’일수록 아름답고 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 광대 바깥쪽에 필러를 주입해서 광대를 더 크게 부각시키는 시술을 택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계란형이면서 약간은 통통한 얼굴을 미인형으로 생각해왔다. 광대가 나오고 뺨이 꺼지면 이른바 ‘말상’이라 하여 아름다운 얼굴형으로 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국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필러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안젤리나 졸리와 이영애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인종적 차이점에 따라 시술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피부과학회에서 필러시술시 인종적 차이점에 대해 강의를 준비하다가 미국성형외과학회지에 실린 인종별 미인형에 관한 한 논문을 보고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안젤리나 졸리, 힐러리 더프, 제시카 알바 등 10여명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 평균적인 서양 미인형으로 제시했다. 중국 미인형은 궁리, 판빙빙, 리빙빙 등 16명, 한국 미인형은 이영애, 이민정, 고소영 등 10여명, 일본 미인형은 여성연예인 10여명 등의 사진을 바탕으로 도출했다.

그 결과 선호하는 미인형이 인종별로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같은 동양권에서도 나라별로 차이가 났다. 서양 미인형은 동양미인형에 비해 상당히 남성적이고 광대도 발달돼 있다. 턱은 사각턱에 가깝고 입술이며 눈매, 콧대가 크고 뚜렷하게 생겼다. 아시아에서는 나라별로 선호하는 미인형이 좀 달랐다. 중국 미인형은 얼굴이 제일 갸름하고 콧대가 날씬한 반면 한국 미인형은 세 나라 중에서 가장 볼살이 통통했다. 이른바 ‘베이비 페이스’ 혹은 복스러운 얼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일 어필하는 미인형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피부과학회에 강의차 북한이 운영하는 ‘평양대성관’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서빙하는 여종업원이며 벽에 걸린 북한 미인도가 전부 볼살이 통통한 게 아닌가. 남북이 좋아하는 미인형이 같다는 사실에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견딘 웅녀의 같은 자손들임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서구일 < 모델로피부과 대표원장 doctorseo@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