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디지탈, 직원 12명 미니회사…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세계 톱10 '큰 꿈'
마이크로디지탈, 직원 12명 미니회사…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세계 톱10 '큰 꿈'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마이크로디지탈. 이 회사에 들어서면 수많은 장비가 놓여 있다. 개발 중이거나 제품화한 장비들이다. 미국 버클리대(학사)와 노스웨스턴대(석·박사)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경남 대표(45)가 이끄는 이 회사는 직원이 12명에 불과한 미니 회사다. 하지만 세계적인 거인들과 겨루고 있다. 이 회사는 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톱10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떤 핵심 역량이 있는 것일까.

미국 시카고는 겨울에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종종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다. 1990년대 중반. 김 대표는 미니 버스를 운전하려고 시동을 걸었다. 때마침 폭설이 내려 단독주택이던 집의 문조차 잘 열리지 않았다. 그날 따라 어린 아들이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에 타고 싶다며 따라 나왔다. 눈길을 조심스레 달리는데 후진기어가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닌가. 눈발이 앞을 가리고 버스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어린 아들은 그런 상황도 모른 채 마냥 즐거워했다.

당시 김 대표는 서울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대를 거쳐 노스웨스턴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꺼번에 7가지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다. 버스 운전도 그중 하나였다. 그 뒤 지도교수로부터 티칭조교 제안이 들어왔다. 티칭조교는 무척 힘든 일이다. 학부생을 가르치고 시험문제를 출제하며 때로는 치열한 토론을 매끄럽게 처리해야 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월 15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연구를 도와주는 연구조교와는 달리 워낙 힘든 일이어서 그때까지 한국인으로서 이 일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노스웨스턴대는 부잣집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이고 학생들의 자존심도 매우 강한 곳이었다. 만약 서투른 영어를 한다든지 실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가차없이 쫓겨날 수도 있었다.

마이크로디지탈, 직원 12명 미니회사…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세계 톱10 '큰 꿈'
그는 선뜻 승낙했다. 후에 한국에서 마이크로디지탈을 창업한 김 대표는 “이때 기계설계 주물 및 로봇제작 라인자동화 등 모든 일을 해봤고 이게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술회했다. 기계제작 실무과정을 배운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실력을 키워갔다. 그는 4년 만에 노스웨스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모두 땄다. 그 뒤 최첨단 군사위성을 연구하는 미국 국가기관인 로렌스리버모어랩을 거쳐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 본사에서 개발부장으로 일했다.

이쯤 되면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연봉으로 1억5000만~2억원 정도 받았고 스톡옵션으로 수억원의 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편안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대학 몇 곳에서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창업에 나섰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를 했으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더 큰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분야는 바이오-메디컬 관련 측정장비로 잡았다. 앞으로 바이오가 유망 분야일 것으로 봤고 전공인 기계공학과 접목시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이크로디지탈, 직원 12명 미니회사…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세계 톱10 '큰 꿈'
2002년 수원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직원 1명을 데리고 창업했다. 미국에서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고생길이 시작됐다. 그는 “무려 5년 동안 집에 단 한푼도 갖다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계설비라는 게 아무리 해본 분야라고 해도 개발하는 데 2~3년 정도 걸리고 제품을 알리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자본을 회수하기가 힘들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인 셈이다.

첫 제품은 ‘DNA칩 슬라이드 글라스 스핀 쿼터장비’였는데 재료비만 1억5000만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개발 이후 나중에 2000만원을 받고 간신히 팔 수 있었다. 몇몇 장비를 거쳐 2007년 ‘검체 진공 밀봉 통합솔루션(iSBS)’을 개발했다. 이 장비를 개발하면서 점차 사업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혈청을 극저온으로 보관할 때 일부가 증발하거나 오염되는 사례가 있는데 우리 솔루션은 효율적으로 보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검체(주로 혈청)를 밀봉해 작게 나눈 뒤 바코드를 붙여 컴퓨터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가톨릭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원자력병원 등 50여곳에 납품했다.

이어 ‘유전자발현 발광측정장비(LuBi)’를 상용화했다. 유전자 진단시 효소 반응에서 나오는 미세한 빛의 양을 이용해 샘플 내 특정 유전자의 양을 측정하는 장비다. 이 장비는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 연구 등에 필수적인 설비다. 학교 연구소 병원 제약회사 등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CE 인증도 받았다. 대부분 직원이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멤버들이며 4개 대학과 산학협력을 하고 있다.

아울러 서린바이오사이언스의 자금 지원을 받아 여력을 키웠고 일부 제품은 서린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마케팅이 강한 서린과 개발 능력이 있는 마이크로디지탈이 윈윈 전략을 세운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의 핵심 역량은 광학 측정 기술과 자동화설비 및 제어 기술”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개발 중인 제품이 여러 개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디지탈, 직원 12명 미니회사…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세계 톱10 '큰 꿈'
우선 상반기 선보일 ‘Real Time-PCR(RT-Polymerase Chain Reaction:실시간 중합효소 연쇄반응)’ 장비가 그중 하나다. PCR 증폭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검사하고자 하는 유전자를 정량 분석하는 장비다. 김 대표는 “이 장비는 분자진단 장비의 총아”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는 ‘배지 블렌딩 시스템’을 내놓을 예정이다. 배지는 동물세포 등이 잘 자랄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는 용액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약 60가지 성분이 들어 있다. 이를 임펠러 없이도 물과 잘 섞일 수 있도록 한 장비다. 김 대표는 “바닷가의 파도 치는 원리를 이용해 양쪽의 공기주머니에 충격을 던져줘 용액이 골고루 섞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이 주로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 설비를 개발한다.

내년 하반기에는 ‘복합형 마이크로 플레이트 리더’를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하나의 장치 내에서 흡광 형광 편광 발광 측정을 할 수 있고 바이오 시료를 다양한 측정 모드로 감지할 수 있는 장비”라고 말했다. 해마다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일부 제품은 정부의 연구·개발 프로젝트 과제에 선정돼 개발 중이다. 그동안 특허 8건을 등록했고 10건을 출원했다.

김 대표는 “우수한 인력과 대학교수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바이오-메디컬 측정장비 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부을 계획”이라며 “이를 토대로 2015년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고 2020년에는 이 분야에서 글로벌 톱 10에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