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결산법인들은 다음달 말까지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지난해 실적 결산과 이익배당을 비롯해 이사 및 감사 해임, M&A(인수·합병), 신사업 진출을 위한 사업목적 변경 등의 경영 관련 사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기업들의 주총 일정 겹치기와 전자투표제 미도입 등으로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여 기회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현재 38개 회사가 전자투표제를 이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선박투자회사 등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다. 지난 17일 경인방송이 올해부터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비상장사여서 의미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전자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주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2010년부터 도입됐지만 기업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의무가 아니라 기업들의 의지에 따라 도입되기 때문이다.
전자투표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주총 전에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주총시즌이 이미 본격화된 현 시점에서 상장사들이 추가적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기업들은 전자투표제 비도입 사유로 시스템 오류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탁원이 국제표준의 정보보호인증 취득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아이디 등록제로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미국 등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 공인인증서로 주주본인을 확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만장일치식 주주총회를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등으로 대주주와 경영진이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등한시 여기는 상황이라고 업계에선 지적하고 있다.
마종훈 네비스탁 기업평가팀장은 "주총이 평일 오전 9~10시께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투표제를 도입한다면 소액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상장사들이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들을 대접하는 것에 비해서 소액주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섀도보팅' 제도 폐기 내용을 담고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18대 국회처리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전자투표제 도입 활성화 시점이 재차 미뤄졌다.
섀도보팅제는 예탁원에 신청한 회사들에 한해 주주총회에 불참한 주주들의 의결권을 참석 주주들의 투표 비율대로 반영하는 중립투표제다. 섀도보팅제는 일부 부실기업과 경영진의 남용으로 도입 의의와 다르게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자본시장법 개정과 함께 2015년까지 폐기될 예정이었다.
선진국들은 주주중시 경영 등을 위해 전자투표제를 채택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2008년 말 기준 6573개 상장사 중 44.8%에 달하는 2947개사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또한 매 주총시즌마다 여러 상장사의 주총이 특정일과 시간에 몰리는 '주총데이' 여파로 소액주주들들의 참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의 경우 414개 상장사가 하루에 무더기로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슈퍼 주총데이가 등장하기도 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